★ 작가님의 리뷰 공모 요청 사항에 맞춰 작성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다른 생각이 드신다면 피드백을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호러는 무서운 느낌을 받게 하는 장르이며, SF는 가상의 미래를 상상하는 장르입니다.
물론 이런 정의가 장르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플랫한 분위기를 지적한다고 할 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 소설의 전략은 둘로 양분됩니다. 붉은 빛이 강렬한 공포적인 이미지를 조형하는 것과, 그리고 그 조형을 고증하는 SF적 상상력이 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에서 착안하여 겨울의 성격을 가진 얼음을 불러오고, 기괴하게 죽은 시체를 이미지화 하는 것에서 붉은 색을 가져옵니다. 계절감에 따른 이미지를 잘 살린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인한 아포칼립스 내러티브를 차용해서 SF적인 설정을 살립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녹차빙수님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조형과 장르적인 변주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용의 절반 정도가 SF적 고증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은 숙고할만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장르 문학을 읽는, 그에 앞서 소설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는 재미입니다. 작품의 절반이 설정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재미있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소설은 좋았습니다.) SF에서 고증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상상인 점에서 고증과 상상 사이에서 줄타기는 벌어집니다. 그 것은 호러와 SF 사이에서 진행되는 줄타기의 연장입니다.
좋은 호러는 공감과 감정 이입이 가능한 소설이라고 합니다.(호러/김봉석, 김종일)
공감과 감정 이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감정을 고조 시키고 위기를 빗겨가기나 피하기를 기원할 수 있게 해야합니다. 물론 그 기대는 대부분 무너지며 비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붉고 차가운 크리스마스>는 평범한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멸망의 과정을 다룹니다. 그런 점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평범한 우리들은 쉽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러의 이미지에 당도했을 때, 우리는 고조되는 느낌 대신 회화나 조각을 보는 것에 가깝게, 참혹한 현장을 감상하게 됩니다. 위기의 전조는 있습니다. 노숙자의 시체 주위에 흩어져있는 샬레나, 바이오 공장의 암시 등은 이야기가 무언가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위기의 해부에서 제시되는 것은 긴 SF적 고증의 설정들입니다.
아포칼립스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성을 다룹니다.
그런 점에서 아포칼립스의 전조에서의 인간미가, 과학자의 후회 뿐이라는 것은 이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회화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섬세하고 강렬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이 이미지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라는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약간의 인간미를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가득 채우는 것은 일상의 평범합니다. 그리고 균열이 발생하는 곳에서 멈추게 됩니다. 인간적인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비인간성이 한 줌 퍼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냄새를 가득히 하고 비인간성을 더욱 참혹하게 할 지, 아니면 그 반대를 조형할지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