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새벽, 어느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에서 벌어지는 짧고 강렬한 추격전입니다. 저는 이야기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김이환의 단편 「바나나 껍질」이 떠올랐어요. 「바나나 껍질」에서 주인공 민서가 어두운 귀갓길에 정체불명의 남성으로부터 쫓기는 장면은 두 번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공포스러운데,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에서도 부분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대 시민의 가장 큰 두려움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잠재합니다. 우리가 겹겹의 안전장치를 달고 살면서도 끝내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한 뼘 짜리 보금자리에서 벗어난 순간 바로 옆의 어둠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끔찍한 비극은 대부분 평범한 인간의 예측 범위 너머에 있습니다. 결국 이런 이야기가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포인트는, 나의 일상 또한 비극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어떤 확신에 찬 위기의식에서 기인하는 듯합니다. 작가는 「고속버스」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인상적으로 표현해낸 바 있죠.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곳도 충분히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말의 위력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에서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서술자가 새벽에 혼자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재수 없게 맞닥뜨리는 일은 현실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똑같이 일어나도 다 말이 되거든요.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하게 여겨왔던 공간이 비극의 무대로 재구성되는 순간,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이것이 나의 일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지 가늠해보게 됩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지금 20대 여성이니까요. 무섭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새벽 두 시 경, 술에 취해 숙소 인근의 아파트 단지로 산책을 나왔다가 퍽치기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은 졸지에 범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추격 신은 그리 길지 않지만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쫓기고 있는 주인공의 목적지는 당연히 숙소입니다. 숙소에는 술에 취한 룸메이트가 잠을 자고 있으니 무사히 도착하기만 한다면 함께 반격을 노려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한 직후 분위기는 매혹적으로 반전되죠.
이야기는 주인공이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일상 공간에 잠재된 공포를 재현하는 데 주력하다가 후반부에 인물 간 관계 구도를 역전시키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알고 보니 주인공과 룸메이트는 더 나쁜 사람들이고, 오히려 재수 없게 걸린 쪽은 퍽치기 범인이었던 겁니다. 이런 구도가 아니었다면 납치와 인신매매를 업으로 하는 인물을 주인공 서술자로 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그걸 반전으로 활용함으로써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것이죠. 전 으스스하면서도 참신한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