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성 관념의 고백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불안의 시대 (작가: 심재훈,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10월 10일, 조회 34

이 소설은 작가분께서 2021 박경리 토지문화재단 문인창작실 입주작가로서 활동하시는 동안 집필된 소설입니다. 제가 아는 바가 맞는다면, 이는 이미 등단한 신인 작가분들만 선정 요건에 포함될 수 있으니,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도 보아도 되겠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소설의 리뷰를 작성한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세상에 리뷰 쓰는 데에 자격증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어떻게 쓰든 무슨 상관이겠냐는 무책임한 태도로 리뷰 작성에 임해보겠습니다.

우선 이 소설은 사건이 일자로 이어지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처럼 세 가지의 이야기가 병행하여 진행되다가 서로 겹치는 입체적인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하이랜드>, <종말에 관한 기록>, <로우랜드>, 이 세 가지의 이야기가 불규칙적인 순서로 등장하는데요, 이러한 구조가 어우러지며 여러 의미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에서는, 마호메트가 예수의 탄생을 지켜보는 등 마치 인터스텔라처럼 시간과 공간이 어그러진 4차원적 서술이 등장하기도 하고, 조현병 환자의 독백과도 같은 구구절절한 독백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형식을 파괴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낭만주의적으로 서술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모든 의미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봐도 좋을 테지만, 한 리뷰에 그 모든 것들을 담을 자신도 없으니,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한 부분에 대해서만, 우선 다뤄보고 싶습니다.

바로 14화 ‘<종말에 관한 기록> – 프로이트를 사랑해!’ 부분입니다.

많은 서술자 중 한 명으로, 선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은 욕망을 갖고 있는 남성이 등장합니다. 이 서술자는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선 여성을 보고 갑작스러운 성적 충동을 느끼며, 이를 매우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의 독백으로 서술합니다. 독백을 통해 서술자는 강간을 찬미하며, 눈앞의 여성을 강간해선 안 되는 이유는 오로지 ‘법이 금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동시에 강간을 법으로 금지하는 사회가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있으며 결혼은 이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합법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에 대한 욕망을 사랑의 그림자라고 일컫는 표현을 고백적으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평범한 남성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독백이 모든 남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강간범, 성추행범 등 흉악범을 ‘단지 유약할 뿐인 사람’이라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이는 서술자 스스로를 변호하는 셈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이 당연하게도 모든 남성을 대변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서술자는 스스로 모든 남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모든 범죄자를 대변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강간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떠올리기 힘든 반인륜적인 생각이지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단순히 법이 금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술자는 선영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영이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상술하였듯 서술자에게 있어 사랑이란 단지 강간을 포장하는 단어에 불과하죠. 서술자는 선영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며 그녀를 강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를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할 도구적 존재로 보고 있는 서술자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상기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내면을 직접 살펴보기라도 한듯 세밀하면서 자세한, 타락하고 폭력적인 서술자의 고백을 읽다보면 그 바탕에 불안의 정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침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불안의 시대’를, 이 서술자는 자신이 마음껏 강간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는, 성별을 불문하고 정상인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느낄, 이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여성을 도구화하는 독백을 마치며 그로써 불안을 이겨내었으며, 자신은 비로소 완전한 남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에피소드는 마칩니다.

당연하게도,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부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벗어나서, 서술자는 인격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는 모든 남성이 자신과 같은 성 관념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느끼는 강간에 대한 욕구와 선망을 모든 남성이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타인과 아주 약간의 교류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을, 서술자는 모르고 있을 뿐더러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품 전체에 걸쳐 그가 타인과 의미 있는 교류를 하는 장면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서술자는 사회와 완전히 유리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타인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기르지 못했고, 그것이 폭력적인 사상으로 표출되었으며, 자신을 비롯한 모두가 자신과 같을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술자의 불안의 근원 또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회에, 정상적인 관념에 속하지 못하기에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사회와 정상적인 관념을 지닌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전형적인 범죄자의 내면과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요인을 꼽을 때, 범죄자의 반사회적 성향 및 사회로부터의 소외 등을 강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서술자의 내면을 직접 들여다 본 것 같은 작가의 세밀한 서술은 이를 한층 강렬하고도, 역겹게 묘사합니다.

현실에서 그러한 것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요?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의 배경이니, 사회적 구조니 하는 것들을 신경 써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 창작물 속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면모를 고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깊이 탐구해볼만 하지만, 이 소설은 지극히 현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 그 잣대도 현실의 것을 적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답은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다’입니다. 한낱 범죄자에 불과한 사람이 평소에 어떤 불안을 느꼈는지, 그러한 사항을 신경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어떤 서사도 악인에게 당위성을 부여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성범죄자의 내면적 독백, 혹은 고백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도 함께 알 수 있었죠. 물론 등장인물이 결국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이 서술자와 같은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라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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