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리는 비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비가 계속 온다면 언젠간 내 집이 잠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수연도 비를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내리는 비를 설명할 수 없을거라던 수연은 이내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다. 비가 그치면 곧 물도 빠지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 정체불명의 사람이 등장해 수연에게 알 수 없는 꾸러미를 안겨주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괴한한테 건네받은 꾸러미를 처박아두고 잠에 들었던 수연은 물 새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경악할 만한 광경을 보게 된다. 분명 옥탑의 풍경이 보여야 할 창문 너머로 물이 가득 차올라 있는 것이다. 당황한 수연은 잊고 있었던 꾸러미를 열어보고, 그것이 무언가의 대가로 주어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곳으로부터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푸른 물결이 당신을 인도하리라.]
라는 기억의 잔상과 함께 수연은 길을 떠난다.
자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자기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180도로 달라졌는데도 수연은 그렇게까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 상당히 어색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물고리가 보여준 기억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아직 초반부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너무 현실감이 없어 오히려 적응을 빨리 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빨리 상황에 적응하고 살 길을 찾아 움직이는 수연의 적응력과 행동력이 부러울 뿐.
보호 구역에 들어선 수연은 워터농장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두일, 다솜, 다영을 만나 그들에게 기초적인 정보와 도움을 얻고, 보답하려 마음을 먹는다. 수연한테 순식간에 마음을 연 다영을 보니 전개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 혹시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재난 상황에 불쑥 들이닥친 낯선 사람을 그렇게까지 걱정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다영에게 핀잔을 주지만 괜히 쑥스러워 그러는 듯 했다. 하기사 자신을 걱정했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아직 초반부라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가 크다. 반장들은 어디서 세력을 만들어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인지, 다영과 다솜, 두일에게 얽힌 사연은 무엇인지, 왜 수연만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지 등. 개연성 있게만 진행한다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수연이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