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엔 좀비도 변호사가 필요하다. 감상

대상작품: 좀비를 살인한 죄 (작가: 다크판타지,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9월 26일, 조회 28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인간이 이룩해 놓은 기술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전염병의 백신을 만드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지요.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게 되긴 했지만, 이제 우리는 변이에 대응할 치료제와 백신이 만들어질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팬데믹은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갈등을 만듭니다. 서로를 믿지 못 하고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하지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과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현대의 인간 사회에서 톱니의 맞물림이 깨져 나가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라면 우리가 익히 접해온 장르가 잘 보여주고 있지요. 바로 좀비 문학입니다.

이제는 좀비 아포칼립스물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해주는 이 작품, ‘좀비를 살인한 죄’는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 이후의 상황을 다룬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좀비의 시대가 도래하고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건 여타 좀비물과 다르지 않습니다만, 인류는 존망의 위기 속에서도 발빠르게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새로운 혼란이 시작됩니다.

1. 치료제가 개발된 시점에서, 좀비를 인간으로 봐야 하는가

이전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라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 화두였습니다.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건 좀비도 멀쩡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뜻합니다. 그러니 인권이 다시 부여한다는 주장도 일견 타당합니다. 아니, 문제의 출발은 좀비도 일종의 바이러스 감염자인데, 그의 인권을 무시해도 되느냐는 문제부터입니다. 사실 그런 주장에 대해 보통은 첫째로 의식이 없고 둘째로 일반인을 공격하기 때문에 정당 방위의 차원에서 공격한다고 변론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서 법이 얼마나 구속력을 가지는가 하는 주장도 어느 정도는 타당하지요. 국가의 보호 없이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치료제가 있습니다. 치료제를 맞으면 좀비들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치료제를 맞기 전까진 여전히 인간에게 위협적인 대상입니다. 단시간에 모든 좀비들에게 치료제를 투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좀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이 소설에서 나뉘어진 두 집단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갈등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김 재철로 대변되는 이상론자(편의상 붙인 명칭입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들은 좀비가 된 이들이 가진 인권을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그들이 무정부 시대로 돌아가지 않은 이상, 좀비가 된 사람들의 인권 또한 존중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으로는요.

현실론자들은 생존에 큰 도움도 되지 않았던 자들이 치료제가 등장했다 하여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에 불만을 가집니다. 이것도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현실론자들은 생존을 위해 사람들과 물자를 모으고 앞장서서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그런데 이상론자들이 이제 치료제를 빌미로 자신들을 살인자로 몰아가려 하니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지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목숨 걸고 구해온 물자들로 살아온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역사의 여러 장면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던 장면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로 예를 좁혀도 6.25 이후에 독립 운동가들의 사상 문제로 많은 숙청과 반목이 존재했습니다. 그 분들은 모두 나라의 독립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위해 함께 헌신했지만, 독립이 이루어진 시점에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역할에 따라 상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역사를 보는 여러 독자분들의 관점과 신념에 의해 해석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쓰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적절한 사례가 떠오르지 않아서 남겨둡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치료제가 개발된 시점에서 과거에 좀비를 죽였거나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살인자로 봐야 하는가?

이 부분이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논제라고 생각됩니다. 치료제를 투여받은 사람은 의식을 회복하고 좀비였을 때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정신 분열증에 걸렸거나 마약으로 환각 상태에 놓였던 환자와도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살기 위해 좀비를 죽였던 행동도 법적으로는 살인죄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방어와 생존을 위해 좀비를 쓰러뜨렸지만 그들을 치료 가능한 환자로 보는 순간 살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좀비 시대긴 해도 이런 문제는 뚜렷한 답이 나오기 힘든 질문이고 지금 코로나의 시대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고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정당 방위에 대한 딜레마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취객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해도 여럿의 증인과 증거가 없이 쉽사리 반격을 해서는 안 되지요. 가해자가 되려 다치기라도 하면 가해의 피해의 위치는 바로 뒤바뀝니다. 이건 법 집행자가 신적 능력을 갖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고 고민해서 세운 잣대는 수많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사례들에 의해 예외 규정과 또 그에 따른 예외 규정이 만들어지고 보완되어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선의의 피해자는 계속 발생하고… 과연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좀비에게 물렸을 경우에만 반격을 허용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겠죠. 내 주위 2미터 안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서 접근하는 좀비에게만 반격을 허용? 어떤 규정을 세우려 하면 할 수록 내 몸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작품에서의 갈등 관계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 이야기도 명쾌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깊게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좀비도 사람이다를 외치는 이상론자와 우리가 살고 봐야 한다는 현실론자 사이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좀비를 죽이는 사람들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작가님이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끌고 가지 않고 갈등 관계를 명확하게 끌어주셨기 때문에 후반부에 이어지는 파국은 더 폭발적이고 좀비 아포칼립스물 특유의 암울한 재미가 가득합니다.

게다가 굳이 작품 안에서 화두를 많이 꺼내놓지 않으셔도 브릿G의 독자분들이라면 완독 후에 많은 생각을 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감염자를 대하는 자세와 앞으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우리가 매일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좀비물과 결합한 시도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닐 것이 분명하지만, ‘좀비를 살인한 죄’는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에는 들어갈 만한 멋진 단편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있는 도현의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인데, 비중이 많지 않아서 아쉬우면서도 연작을 계획하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행복한 기대를 해보게 되는군요. 작품을 읽어보시면 독자분들께서도 같은 기대를 하게 되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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