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시간이 되야 하건만, 나이가 들고 나와 남에 대해 덧붙일 얘기가 많아지면서 그러지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지요.
재미있는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이 작품 ‘가!’는 특히 친지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 더 생기기 쉬운 슬픈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입니다.
짧은 작품이지만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독자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랬고 친척이 많이 모이는 집에서 자란 분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근황 토크 시간이지요.
그 시간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중 몇 명 되지 않을 겁니다. 공무원이 되었거나 대기업 혹은 공기업에 공채로 합격이라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 끌끌 혀를 차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진 혼기라도 지났을라 치면 재벌 그룹의 압박 면접이라도 보는 것 같은 불편함 가득한 시간을 보내야 됩니다.
가정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제 주위 사람들의 명절 분위기는 대체로 그런 편이더군요. 다양한 학력과 인생사를 가진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과 별 관계도 없는 친척 누구와 비교되고 저울질 당하며 안 겪어도 될 패배감과 우울함을 2,3일 동안 안고 지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그 감정들은 명절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치 저주의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집안의 어른인 할아버지 때부터 생긴 가!라는 저주의 형태로 표현이 되었는데, 사실 그건 가족 구성원들이 계속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살아있는 저주의 형태로 집안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평범하거나 독특하지만 특출나지 않은 아이들이 주로 그런 저주의 대상이 되겠죠.
그 저주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의 입과 끌끌 차는 혀에서 태어나 아이들의 귀로 들어가서 오랜 시간 머물며 그들의 자신감과 평온한 일상을 갉아먹습니다. 형태도 없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없앨 방법도 없지요.
그저 어디선가 울리는 그 저주의 말들을 곱씹으며 참아내거나 괴로워해야 합니다.
표현이 좀 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억에 “가!’의 저주는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 남아서 대상이 된 자를 괴롭혔습니다. 이제 저주의 대상에서 시전자의 나이가 된 지금도 당시의 기분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가련한 저주의 희생자들은 대항할 힘도 의지도 없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이해를 해보려 해도, 또한 그런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줘도 저주의 시전자들은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그들은 계속 주문을 외우고 저주를 퍼뜨리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희생자들의 선택은 두 가지 뿐입니다. 거리를 두거나 함께 살면서 마음의 문을 닫는 거죠.
‘널 생각해서’ 혹은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들이 상처가 되기 시작했다면 이제 그 저주의 말을 꺼낼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저는 하지 못 했지만 이 작품을 조금 더 일찍 봤다면 그들에게 이 말을 해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이런 일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마음 속으로라도 한 번 크게 외쳐보셨으면 합니다.
난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좀 가! 라고 말이죠.
이 작품은 짧은 분량 속에 재미와 깊은 여운을 함께 남겨주는 속이 알찬 작품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미천한 글을 남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