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이치입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이 격언은 프리드먼이 이야기한, 경제학의 원리 중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경제학을 끔찍이도 싫어했던지라 자세한 사항까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 공짜로 식사를 대접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그 사람과 식사를 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시간, 즉 기회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이 소설이 그러한 경제학적 원리를 알리고자 쓰여진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8월 32일 가상의 공간이라는 판타지적 개념과 경제학은 그리 어울리지 않은 세계니까요. 그러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 포기해야 한다는 주제를 도출해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은 개강을 앞둔 대학생과 함께 시작됩니다. 개강을 좋아하시는 독자 분이 계시다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캠퍼스는 낭만으로 가득 한 공간이니만큼, 그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인 개강 또한 낭만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학 생활의 낭만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지 않는 대학생이라면, 개강은 끔찍한 날입니다. 오히려 중고등학생 시절 개학이나 다름없죠. 끝없는 강의와 과제의 굴레 속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관문입니다. 대학 생활이 낭만으로 가득한 분이시라면, 고등학생 개학으로 대입해서 생각하시면 감정 이입이 조금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중고등학생 시절 개학도 두근거리는 기억으로 가득한 희망찬 분이시라면……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부럽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개강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주인공은 9월 1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것이 부질없는 소망인 줄 알면서도 술을 마시며 잠이 듭니다. 그렇게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진 세계, 8월 32일에 도착합니다. 풍족한 세계입니다. 어떤 자원이든 하루만 지나면 다시 생겨나고, 그렇기 때문에 펑펑 소비해도 바닥 나지 않는, 더구나 자신이 끔찍이 싫어했던 개강은 영원히 오지 않는 그러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32일의 세계에서 즐겁게 살던 주인공은 어느 날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바로 33일의 세계입니다. 이곳에서도 자원은 무한히 돌아오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32일의 세계에서 사용했던 자원이 33일의 세계에서는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32일의 세계에서 라면을 먹었다면 33일의 세계에서는 라면이 사라지고, 계란을 먹었다면 계란이 사라지는, 사용한 만큼 거두어가는 부가가치세 같은 세계입니다. 10% 정도를 징수하는 부가세에 비해 과세 비율이 상당힌 높은 세계이긴 하군요.
결국 주인공이 32일에서 소비했던 모든 자원은 공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무한정 제공하는 공짜 점심을 열심히 먹던 주인공은, 이윽고 그 공짜 점심을 제공했던 사람이 다름아닌 자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아연실색합니다. 32일에서 자신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만 겨우 연명해가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지난 달 카드 값을 갚기 위해 허위허위 살아가는 모습으로도 비추어집니다.
마침내 주인공은 32일의 세계에서 보낸 날만큼이 지나, 33일의 세계에서 보낼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다음에는 어떤 세계로 떨어질지 공포에 질린 상태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원래 세계로 돌아가 차라리 개강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개강이 없는 세계가 결국 공짜 점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때때로 바라는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방학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에게는 개강이 오지 않는 것이 될 수 있고, 취업난에 휩쓸린 취준생에게는 언제까지나 놀고 먹을 수 있는 환경 등, 다분히 허황된 소망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루어질 리 없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그러한 공짜 점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엇도 잃지 않는 이상적인 선택은 없다는 현실적인 대답을 판타지적인 세계 속에서 구현한 것입니다.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선택을 숙고하게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