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조용한 혁명의 가능성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착한 자들 – 어느 독재국가에서 (작가: Sun해아, 작품정보)
리뷰어: DALI, 21년 6월, 조회 103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를 상기시키는 제목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는 집단이 개인에 비해 더 큰 죄를 저지르며, 결과적으로 더 큰 해악을 미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 국가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아무리 용을 써봤자 드넓은 호수를 흐릴 수는 없는 법이죠. 반드시 경계하고 언제나 감시를 늦추지 말아야 할 대상은 권력을 지닌 집단의 의지입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요.

 

제가 보기에 이 작품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래수’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지만, ‘바크주커’라는 독재국가에서 선전을 위해 정치범의 뇌를 조작하는 임무를 맡고 있죠. 바크주커의 인민은 국가의 의지에 종속되는데, 그 국가가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되려 그 반대죠. 래수가 명색이 의사임에도 비서 ‘스룬’의 의식불명인 아들을 치료해줄 수 없는 이유는 나라의 의료 자원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된 사람들은 대안도 없이 강제 퇴원해야 하고요. 이 나라의 의료비는 무료지만, 힘없는 사람들은 실직적인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연구원 ‘운하이’가 망명을 옵니다.

 

운하이의 연구분야는 정신 개조인데, 실제로 하는 일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의식이 없는 피험자의 코에 운하이가 가져온 무언가를 흘려 넣으면, 순식간에 새사람이 되는 거예요. 기억만 같을 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바크주커 사상에 충실한 인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이 마법 같은 기술은 바크주커의 지도자인 ‘아루성’ 정권 하에서 자행되던 정치적 숙청을 한결 용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형과 살인에 비하면 정신 개조는 훨씬 쉽고 안전한 방식이니까요. 래수와 운하이는 실험실에서 은밀하게 숙청 작업을 이어갑니다. 수월하게 자리 잡아갈 것처럼 보이던 숙청 작업은, 이야기 중반부에 서술자 래수의 인상적인 진술을 기점으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동시에 분위기의 반전과 세계관의 확장도 함께 일어나죠. 무기력했던 개인은 이제 세계를 뒤집을 동력을 갖추게 됩니다. 전 이 시점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특히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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