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건 제목이 맘에 들어서였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제목의 중요성은 말하는 게 입이 아플 정도로 중요하지요. 도입부를 읽다 보니 ‘어, 이거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과 분위기가 비슷한데?’ 하는 생각과 함께 호기심이 확 높아졌습니다. 장편에서 도입부의 중요성 또한 굳이 설명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자, 이렇게 장편 소설로서는 상당히 좋은 스타트를 끊으며 읽기 시작한 이 작품 ‘밤의 틈’은 다 읽고 난 지금도 어떤 작품이다!라고 단언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의 미스테리 장편입니다.
리들러와 아키텍쳐,리치먼과 점보 그리고 클레버는 맘이 맞아서 혹은 어쩌다 보니 아니면 우연찮게 폐건물에서 모이게 되고 쏙독새라는 그룹을 ㅁ나들어 매주 모임을 갖습니다.
이 모임은 약간 아나키스트들의 토론장 같은 분위기를 띠기도 하고, 초반엔 뭔가 거창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생각해낸 게 인간과 로봇이 경기를 벌이는 야구장에 물감 테러를 감행하자는 상큼 발랄한 계획입니다.
여기까지는 배경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밝고 경쾌한 대화와 이벤트들이 등장하면서 ‘이거 제목과는 달리 살짝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분위기네.’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아이의 고사리손으로 뒤통수를 살짝 맞은 기분이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슈퍼 히어로 매니아 리치먼, 자칭 세계 제일의 지능을 가진 여왕님 스타일의 까칠한 클레버,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인 리들러와 그의 친구인 아키텍쳐는 그들의 세상을 향한 첫 테러를 멋드러지게 성공시킵니다. 이제 다음은 어떤 아기자기한 테러를 기획할까 궁금해하던 시점에 갑자기!
아포칼립스가 도래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멘붕이 왔었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 도입부가 또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인들의 이상한 행동을 느끼기가 무섭게 자기 집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 아키텍쳐는 누명을 쓸까 두려워 리들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두 사람은 일단 시체를 암매장하기 위해 적합한 장소를 찾아 옮기기로 하는데 여기서 또 한번 예상을 강하게 뒤엎는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그 뒤로는 범 인류적인 재앙을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게 됩니다. 거기에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간 재앙의 시작이 쏙독새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도 밝혀지면서 더욱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등장인물 중 비중이 너무 적은게 아닌가 싶었던 인물이 알고 보니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재앙이 인류를 덮치고 난 후의 전개는 여느 아포칼립스 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그 사이에도 제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쳐 주시는 부분은 잊지 않고 등장하더군요.
뭐지 뭐지 하면서도 계속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이야기의 일관성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의 추세가 탈 장르 혹은 퓨전 장르이고 이 이야기가 배를 타고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는 엉망진창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도입부의 야구장 테러 부분을 읽다가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하고 화면을 접는 독자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끝까지 읽기 위해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야 하는 장편 미스테리입니다.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거야’ 하는 기대를 갖고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는 글 읽기가 될 것 같군요.
작가님은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작품에서는 첫 문장부터 스트레이트로 강하게 휘몰아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