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빨간 마스크 괴담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본인이 예쁜지 아닌지 여부를 물어보고 대답 여부에 관계없이 입을 찢어주겠다고 달려든다는 괴담이었다. 예쁘다고 대답하면 똑같이 만들어주겠다고 입을 찢고, 못생겼다고 대답하면 자기를 화나게 했다고 입을 찢으니 속으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빨간 마스크는 100미터를 10초 이내로 주파할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출중하지만 높은 곳은 잘 올라오지 못하니 빨간 마스크를 만나면 고층 빌딩으로 도망가라는 것이 빨간 마스크의 유일한 퇴치법이었다. 빨간 마스크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나중에는 아류격인 파란 마스크, 하얀 마스크 괴담도 떠돌고는 했다(그런데 원래 마스크는 흰 색이 기본 아닌가?)
이 소설도 빨간 마스크에 관한 이야기다. 갑자기 2020년대에 들어 새로 부활한 빨간 마스크 괴담은 괴담이 현실로 다가와 더더욱 공포감을 선사한다. 평범한 괴담인 줄 알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입을 찢고 다닐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잠시 진짜 현실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봤는데, 오싹하니 소름이 끼쳐 바로 그만두었다.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김우진 형사와 경찰청장은 DNA나 범인의 소지품같은 증거물이 없는데도 CCTV에 범인의 모습이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입을 찢고 다니는 빨간 마스크를 사람이 아니라 요괴나 괴물, 귀신일 거라고 단정했다. 좀 의아하기는 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수사에 사용하는 시대인데, 단순히 저렇게 나열된 사실 하나만으로 귀신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가도 곧바로 철회했다. 그만큼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니 직감적으로 무언가 느꼈겠지 싶어서.
경찰청장과의 독대 이후 김우진 형사는 무당 박시아, 신부 김대진 등 퇴마와 구마 전문가들을 초빙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좀처럼 빨간 마스크는 쉽게 잡히지 않고 희생자를 더 만들었으며,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무당들과 신부들마저 사냥한다. 그 과정에서 김우진, 박시아, 김대진, 조인나가 머리를 맞댄 결과, 빨간 마스크가 귀신도, 악마도 아닌 신이 되려는 요괴라는 것을 알아채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결국 빨간 마스크는 처리되고 사람들은 평화를 되찾는 해피엔딩인데, 읽으면서 뒷맛이 깔끔하지 않아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고, 작품이 전반적으로 어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개인 감상이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르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걸 미리 밝힌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대사에서 어색함을 느꼈다. 인물들이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면 일반적인 대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과장된 연극톤으로 연기하고 있는 배우나 소리내어 교과서를 줄줄 읽어내리는 학생이 떠올랐다. 자연스러운 구어체가 아니라 줄글같은 문어체로 대화하고 있으니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 하다.
두번째로는 빈번한 주어의 생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생략한 주어 중 절반 정도는 생략하지 않았어도 될법 해 보였다. 주어생략이 지나치게 많으니 읽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는 것이 맞는지 다시 올라가서 확인하는 일이 종종 생겼고, 이러면서 글의 흐름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세번째로는 떨어지는 가독성이다. 문장을 끊지 않아도 될 곳에 온점을 찍어 문장을 끝내거나, 문장을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문장의 호흡이 들쑥날쑥하여 글이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문장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여러번 언급하거나, 단을 바꾸어 강조하거나 하는 등 다른 기법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장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호흡을 짧게 이어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면 글 구성이 전체적으로 짧은 문장과 빠른 스토리 전개로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본다. 단어 하나와 긴 문장이 한 단락에 뒤섞여 있으니, 글을 읽기만 하는 데도 스타카토와 늘임표가 멋대로 섞여 연주되는 악보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가장 기초적인 맞춤법이나 비문, 오탈자 등도 수정되어 있지 않아 읽는 내내 ‘아, 여기 오타 있네’ 하는 생각이 들어 글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네번째는 정말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유다. ‘그녀’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쓰여서 읽기에 불편했다. 빨간 마스크, 범인, 살인자, 괴물, 귀신, 그 여자, 그것, 그 존재 등 빨간 마스크를 다양한 단어로 지칭할 수 있는데, 같은 단어인 ‘그녀’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앞에서 읽었던 내용은 사라지고, 그녀라는 단어만이 눈에 확대되어 인식되더라. 글을 쓸 때 대체할 단어가 아예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은 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것이 글을 매끄럽게 만드는 데 더 보탬이 되지 않을까.
빨간 마스크가 사실은 일본에서 탄생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힘을 키운다는 소재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초반부까지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위에서 말한 것 같은 이유로 완결편을 읽을 때는 재미가 급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님이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라던지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 등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써주실 다른 작품을 기대해볼 만 하다. 무엇보다도 독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게 우선 아니겠나. 다음에 선보일 작가님의 작품은 이번 작품보다 더 재밌는 소재, 매끄러운 가독성을 지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