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무척 재밌어보였다. 왕의 둘레 34번지? 무척 중요한 단서가 숨겨진 제목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어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내 감은 틀렸다. 제목인 <왕의 둘레 34번지>는 그냥 작중에 등장하는 책 제목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꽤나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매하게 관련있는 다른 주제어나 주제를 제목으로 정하는 것보다는 소품을 정해서 제목으로 쓰는 게 시선 끌기엔 좋지 않을까?
그리고 스토리 자체도 꽤나 흡인력 있었다. 킴이 진술하고, 폴과 마티나가 킴을 심문하면서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솜씨가 꽤나 좋았다. 폴이나 마티나가 킴을 심문할 땐 인종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외국인이라고 불이익을 주려는 건 아닌지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읽었고, 작중에서 보여준 단서가 내가 읽었던 대사나 지문과 차이가 났을땐 어디서 일이 꼬인걸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간에 사람들이 쓰러진 순서와 배치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 여러번 읽긴 했지만, 그렇게 읽고 머릿속에 사건 현장을 그려본 후 다시 사건 묘사를 읽으니 더 생생하게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사소하게 읽고 지나칠 수 있었을 단어 하나, 대사 하나에도 작가님이 사건과 연관 있는 키워드를 숨겨두어 완결까지 짜릿하게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에게 있어 재밌는 추리소설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가 뭔지 알아내는 건 중독성이 무척 강한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에 허장성세로 킴의 자백을 받아낸 폴과, 폴의 노력으로 마음 편하게 복직할 수 있게 된 에드먼드와, 킴의 사건을 경험삼아 더 베테랑 형사로 거듭날 마티나와 한국으로 돌아가 아기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릴 킴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결말이어서 다행이었다. 혹시나 킴이 범인이거나 공범이라 거짓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나 싶어서 가슴이 꽤나 졸아들었기 때문에.
딱 하나 아쉬웠던 것은 문법이나 맞춤법이었다. 플랫폼 특성상 100% 완벽한 문법구사나 맞춤법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나도 모든 맞춤법과 문법을 지켜서 쓰지 못한다) 그래도 기본적인 오타는 한번쯤은 검수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도, 막상 글을 읽으니 은근히 가독성이 떨어져 쉽게 집중을 할 수 없었는데, 이게 글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기회를 박탈해버린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오랜만에 짧지만 기승전결이 깔끔하고 몰입도 높은 추리소설을 읽어 즐거웠다. 다음에도 이런 보석같은 글을 발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