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초월, 어떤 기묘한 사랑을 기억하며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흑해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1년 6월, 조회 135

소설, 특히 로맨스는 갈등에 기초한다. 발단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위기를 맞고 절정에 오른다. ‘절정’은 갈등의 최고조를 의미하며 이 부분을 읽는 독자는 비로소 작품에 가장 깊이 빠져 있다는 걸 느낀다. 어떤 일을 방해할수록 더욱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이 애인과 자신 사이에 있다면, 주인공은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고자 한다. 관객과 시청자, 독자는 가로막힌 관계를 안타까워하는 한편 힘찬 응원을 보낸다. 인물을 방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서사를 클라이막스로 이끌고 간다. 따라서 로맨스를 쓰는 작가들의 지대한 관심사 중 하나는 이 ‘장벽’을 적당하게 세우는 데에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은 ‘집안’의 다툼부터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 갑자기 회사에서 보내는 해외 출장 등은 스토리텔링에서 사랑을 일시적으로 방해하지만 결국 더욱 견고하게 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방해하는 극강의 장벽은 무엇일까. 리얼리즘은 가문과 현실적 어려움 등 주로 인물 간 관계를 극한으로 내몬다, 판타지, 또는 환상소설에서는 좀 더 폭넓은 장치가 사용된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은 ‘종(種)’의 차이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동양의 구미호부터 서양의 흡혈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이물과 인간의 사랑은 종의 장벽에 가로막히곤 했다. 이런 난관은 가문과 출생의 비밀, 해외 출장으로 인한 문제와는 다른 느낌이다. 애초에 생명에 맞먹는 것을 담보로 해야 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산화 작가의 단편 「희박한 환각」은 해양생물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다. 이경희 작가의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에는 사람을 사랑한 구미호가 나온다. 그나마 두 작품의 동물과 이물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만약 인간과 이물이 포식과 피식의 관계에 있다면, 그 사랑은 정말로 큰 위기를 맞는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사랑하거나 피식자가 포식자를 마음에 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만화 『도쿄 구울』에서 식인을 하는 구울이 숨어 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설령 구울과 사람이 사귈 수 있더라도, 공개 연애를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동양에 구울이 있다면, 서양에는 사람의 피를 먹는 흡혈귀가 있다. 흡혈귀는 구울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흰 피부에 햇빛을 잘 보지 못한다는 등 신비하게 묘사되는 흡혈귀가 도심에 출몰했다고 상상해 보자. 사람을 해치지 않더라도 당장 비상사태가 선포되지 않겠는가.

안채윤 작가의 《흑해》는 바로 이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종이 다르고, 심지어 한쪽이 다른 쪽의 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 (이 작품은 흡혈귀가 죽은 사람의 피를 먹어도 살 수 있다는 설정이지만, 위화감과 공포를 조성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특별히 《흑해》는 이종(異種) 간의 사랑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는데 흡혈귀의 ‘영생을 산다’라는 내용이 두드러진다. 불멸의 흡혈귀와 필멸의 인간은 어떤 사랑을 할까. 필시 영원을 사는 쪽은 애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할 것이다. 이토록 장애물이 많은 사랑이라니. 함부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시작만 하면 반드시 애틋하다. 그러니 이런 우여곡절의 사랑을 택한 작가의 안목은 실로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초월하기 : ()과 시간과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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