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아픔을 선택할 때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콜러스 신드롬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4월 18일, 조회 218

내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하고 싶을까? 문득 이런 질문을 해보았을 때, 내가 내린 답은 이러했다. ‘어린 나를 죽이자’. 어린 나를 죽이면, 그 어린 내가 어리면 어릴수록, 살아오는 동안 겪은 많은 고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 그런 일을 겪은 내가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지금의 내 고통도, 사라질 테니까.

 

내 고통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내게는, 가볍지 않은 희귀난치병이 두 개 있다. 나의 성장 과정은, 이제는 연을 끊은 가족들로부터 당한 추행과 폭행과 정서적 폭력이 짙게 지배하고 있다. 때로는, 이런 말을 하면 자극적인 이야기로 관심을 끌고 싶어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나는 고통스럽다. 병 때문에 잃은 일상과 꿈과 안정된 삶이 서럽고,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리고 내게 이런 병을 안긴 이유 중 하나였을 어린 날의 폭력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지금의 이 고통이 싫어서, 그리고 결국 이런 현실을 맞을 거면서 병을 안고 애쓰며 살아온 지난 날의 고통이 너무 아파서 나를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자살과 타살을 구분 짓는 근거 중 하나가 자상에 주저흔이 있는지 아닌지 보는 것이니까.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어느 날 정말 어린 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린 나를 죽일 수 있을까. 나이지만 남이니까, 창문 밖으로 확 밀어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해도연 작가의 <콜러스 신드롬>를 읽으며, 내가 상상 속에서조차 어린 나를 죽일 수 없던 이유를 돌이켜보았다. 시간여행 능력을 지닌 작품 속 인물 재호는 본인의 상상 속에 그린 행복이라는 틀이 명확한 사람이다. 화자인 유슬과 결혼해, ‘콜러스 신드롬’이란 병을 가진 딸 윤하를 낳으며 그가 머릿속에 세운 성은 부서진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재호는 그에게 많은 시간을 쏟고 나름의 애정 표현을 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시간은 재호가 윤하와 애착을 맺게끔 했을 것이다. 제 목숨을 걸고 열 번이 넘게 시간을 돌리고 싶을 만큼. 그러나 그것을 결코 사랑이라 부를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사랑이란, 얼핏 몽환적이고 추상적인 어떠한 느낌처럼 와닿는 단어다. 그렇게 오용되고 남용된다. 그러나 기실 사랑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한 개념도 없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 것마저 사랑할 수 있고, 좋아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재호는 자신의 딸을 좋아하고 일정 부분 정성도 쏟았으나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상에 짧은 시간을 머물었어도, 그 시간 동안 윤하는 뛰는 심장과 말랑한 발바닥으로 걸음마를 하고, 뛰어다니고, 엄마의 뺨을 꼬집고 달콤한 우유를 마셨을 것이다. 윤하에겐 한 사람 몫의 생명이 있었고 시간이 있었다. 누구도 감히 앗아갈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붙건, 한 인격체에게 그것을 앗아간 순간 그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할 자격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나를 죽일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자라나서 매일같이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고 어지러워 누워있는 내가 될 것을 안다. 그가 살아가는 과거의 그 시간 속에서도, 수업시간 배탈을 참고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을 견디며 힘들어할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리고 그가 나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 아이의 시간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그 아이는 살고 싶어서, 배가 아플까 봐 벌벌 떨면서도 매점에서 친구들과 빵을 사 먹고, 아픈 몸을 끌어안고 노트 가득 필기를 하고, 먼지 자욱한 교실을 쓸고, 햇살이 좋다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교정에서 꽃 구경을 했다. 더 어릴 때는 폭력뿐인 하루가 끝나면 멍하니 무릎을 끌어안고 인생이란 무엇이기에 이리도 괴로운가 생각했다. 편안하지 않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그리고 그 아이의 시간이었다.

 

소설이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는, 시간이란 온전히 개인의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재호는 자신이 자신의 시간을 돌린다는 생각에 더욱 죄의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호가 수없이 되돌리며 삭제한 시간 속에는, 유슬과 윤하와 현아들과 수하의 시간이 포함되어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누군가의 시간과 겹치며 비로소 쌓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고 삶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나의 시간과 경험은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부정하고 파괴할 때 상처 입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 할 수 없다. <콜러스 신드롬>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내가 나를 버릴 때 함께 버려지는 것이 무엇일지. 친구와 손을 잡고 걷던 길, 누군가와 입 맞추던 골목, 아동을 돌보는 일을 하며 그들을 품에 안던 어느 방 안… 그들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소설 속 유슬처럼 눈물겹게 다짐한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너는 지난 시간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거야. 하지만, 나는 너를 선택했어.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야. 그러니 지킬 거야. 내가 바랐던 어떤 꿈이 깨어져도,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나이지만, 내가 상상 속 그린 환상이 아니라 스스로 심장이 뛰고 아플 때면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또 힘이 나면 씩씩하게 걷는 선명한 현실이니까. 살아있는 현실이니까. ‘콜러스 신드롬’ 환자처럼 상처받고, 아프고, 위험할 때가 많지만 너의 그 몸과 마음은 너의 모든 것이고, 그게 전부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로 만들어간 시간은 너를 알고 너와 껴안았던 사람들의 것이고 그게 우리의 전부야.

 

소설에는 재호가 행한 타임리프의 영향에 직접 휘말렸음이 선명히 드러나는 인물들, 그리고 그 바깥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자는 재호 본인, 유슬, 둘 사이의 아이들, 그리고 수하와 그의 가족이다. 후자는 유슬의 친구 혜인과 유슬의 엄마, 엄마의 남자친구다. 자신과 자신이 낳았던 수많은 아기의 삶을 빼앗은 재호를 향해 복수하는 과정에서 유슬과 수하는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그때 곁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사건 바깥 인물들이다. 남편이 시간여행자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유슬에게 혜인은 말한다. 내가 그 말을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건, 네게 도움이 필요하고 나는 그 도움을 줄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나 혹은 남의 삶과 시간을 차라리 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 우리의 안에서 재호는 유혹처럼 나타난다. 그때 개인에게 필요한 건 혜인과 같은 목소리 아닐까. 나는 너의 난관과 절망을 다 알 수 없어. 도움을 청하며 네가 하는 말은, 어쩌면 내게는 시간여행처럼 낯설게 들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네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야.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부친에게 얻어맞고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맬 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병을 진단받았을 때, 나를 안아준 목소리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병을 골라내어 실재하는 아픔에 사려 깊은 지지를 보내는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는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간이 곧고 쉬웠을 리 없다. 그런데 그 시간이, 참혹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지는 까닭에 작가의 시간에 나의 시간을 살며시 포갠 채 떠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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