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에게서 삶을 되찾기—당신이 어떻게 감히 나를 선택하는가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콜러스 신드롬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일월명, 21년 4월, 조회 202

영화 <어바웃 타임>(2013, 리처드 커티스 연출)의 주인공 팀 레이크는 후회되거나 불만족스러웠던 자신의 선택을 바꾸기 위해 집안 남자들에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시간여행 능력을 이용한다. 능력을 쓰는 방법은 단순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두 눈을 감고 주먹을 쥔 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된다. 만일 과거를 바꿔 일어난 결과가 이전보다 별로면? 그럼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원래대로 돌리면 된다. 숫기 없는 팀은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나, 결국 이 지나간 선택을 손쉽게 정정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자신의 사랑을 이룬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살던 중 애인과의 관계 파탄으로 고통받는 여동생을 구하려 과거를 바꾸고 돌아온 팀에게 문제가 생긴다. 자신의 딸이 생판 모르는 남자 아기로 바뀌어 버린 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과거를 바꿔버리면 다른 아기가 태어난다.’는 조건은 팀의 시간여행 능력에 중대한 제약을 거는 동시에, 그에게 전에 없이 묵직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여동생에게 일어난 비극을 피하는 대신 원래아이를 버릴 지, 혹은 과거를 바꾸길 포기하고 자기 자식을 지킬 지. 후자를 선택한 팀은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 지나간 선택으로 후회하지 않게끔 자신에게 주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결정대로 남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로맨스 영화에 어울리는 교훈적이고 행복한 결말이다. 사실, 이것보다 더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도 힘들 거다. 그래도 여기서 굳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겠다. <어바웃 타임>에 등장한 모든 캐릭터들이 이 스토리를 좋아할까? 하다못해 팀의 두 맏아이 중 한 명은 아빠의 선택 때문에 태어나지도 못했는데?

시간여행은, 특히 과거를 바꿔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는 아이디어는 미래의 불확정 요소를 배제하고 삶을 온전히 나의 통제 하에 두고 싶다는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한다. 엄마가 아빠 대신 나에게 반하거나, 내 자식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거나, 아무리 기를 써봐도 미래의 비극은 결국 더 큰 비극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골 때리는 각종 나비효과 패널티들은 최선의 선택만 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이 주는 당장의 쾌감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다. 그렇기에 우리는 창작물 속 시간여행자들이 겪는 수많은 시련들을 보면서도 내심 나도 저런 힘을 갖고 싶다고 욕망한다. 저 힘이 내 힘이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 사고의 맹점은 시간이란 전 우주가 함께 공유하며, 개개인의 선택들은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타인에게 유기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간여행자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창작물은 능력을 가진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철저히 주인공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기본 스토리 작법을 위반하면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이룰 수 있는 초능력자가 공공재를 무단으로 사유화하고 타인의 의사 따위 묵살하는 컨트롤 프릭이라는 사실이 까발려 지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자가 수용자의 편이라 이걸 그냥 넘어가는 거지, 적으로 등장한다면 무조건 슈퍼 빌런이다.

이를 염두하고 <콜러스 신드롬>을 읽으면, 이 소설의 플롯은 타임 리프 장르 보다는 히어로 장르의 도식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호는 다른 시간여행자들보다 복이 없다. 과거로만 갈 수 있고, 자기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능력을 쓰기 전의 원상태의 시간선으로 돌아올 수도 없으며, 능력을 한 번 쓰려면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작중에서는 그 능력마저 서서히 잃어버려 하루 정도 밖에 되돌아 가지 못한다. 무엇보다, 재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제약들이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는 그의 전능을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작품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유슬은 바로 이런 남편과 싸워야 한다. 적으로 상대하기 과분하다 못해 쓰러뜨리는 게 사뭇 불가능해 보이지만, 다행히 유슬도 빈손으로 싸우는 건 아니다. 그는 재호의 능력과 목적을 정확히 파악했으며, 가장 중요한 적의 약점도 안다. 냉철한 판단력과 자신을 믿어주는 적극적이고 든든한 조력자들 역시 유슬이 가진 중요한 패다. 그러나 상기한 요소들은 재호를 이기도록 돕는 보조장치일 뿐, 그를 이겨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히어로 장르는 결국 영웅과 악당의 명분 싸움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아 세상에서 지워진 딸을 되찾겠다는 재호의 목적은 짐짓 온당해 보인다. 그의 기준에서 물리적 고통과 죽음을 겪는 이는 재호 혼자라는 걸 생각하면 희생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흥미로운 지점은, 재호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윤하를 향한 부성애이듯, 유슬을 움직이는 동기 중 하나 역시 모성애라는 거다. 유슬을 제외한 아무도 재호를 자기연민에 빠진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재호 때문에 딸 유나를 잃은 수하도 차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그러나 같은 자식을 잃은 아내에겐 자신과 딸을 핑계로 벌인 남편의 행동을 악행으로 규정하고 비판할 권리가 있다.

유슬의 싸움은 숭고하다. 그는 재호에게 선택받지 못한 모든 딸들과 자기 자신을 대변한다. 유슬이 후배들과 함께 재호를 제압하고 6년 간의 루프라는 감옥에 가둬버리는 부분이 다소 너저분하고(재호에게서 게껍질을 뺏은 후 바로 죽이거나 감금하지 않고 굳이 루프라는 징벌을 내린 게 객관적으로 번거로운 방식이라는 말일 뿐, 장면 자체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비정함에도 독자들이 그의 복수가 정당하다 느낀다면, 그건 윤하가 존재하는 삶이라는 재호의 선택과 장애를 갖고 태어날지라도 아기를 낳아 키우겠다는 열 여섯 명의 유슬들의 결정의 가치가 동등하기 때문이다. 재호가 원하지 않는 자식들을 도로 삼켜 없애는 크로노스라면, 유슬은 그에 대항해 자식을 지키는 레아이며 세상에 존재할 권리를 억압자로부터 되찾아오는 제우스다. 너와 윤하를 사랑해서 선택한 일이라는 재호의 말에 네가 뭔데 나와 내 자식을 선택하냐는 유슬의 반박은 옳을 수밖에 없다.

멋진 소설이다. 악당은 납득가게 조형되었고, 주인공은 멋지게 승리하며, 인물들 간의 관계와 사정은 독자로 하여금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한다. 그러나 글을 닫기 전에 아쉬웠던 점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재호의 노트가 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설정 상 재호의 시간여행 능력은 물리적 이동이 아닌, 오직 정신만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노트는 어쩌다 윤하와의 이별부터 능력의 상실까지 상세하게 적힌 재호의 아킬레스건이 된 건가. 윤하를 찾기로 결심하고 두 번째로 시간을 돌린 직후부터 그것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계획에 실패해 되돌아갈 때 마다 갱신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그러면 또 시간을 되돌리자는 결정까지 쓴 이번 시간선의 기록은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시간을 되돌리면 사라질 텐데 재호가 그 정도로 성실하게 노트를 작성할 이유가 있나 싶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 소설을 즐기지 못할 정도로 큰 오류는 아니다. 기록 순서를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모순을 해결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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