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밖에 안 올라온 소설의 리뷰를 쓰는 건 펼쳐지지도 않은 이야기에 대해 감상을 다는 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상한 일이고, 지금 그걸 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봐도 이상하다.
난 지금 마치 돌쟁이 사주를 봐 주고 있는 사주명리학자가 된 기분이다. 실제 사주명리학자들 중에는 돌쟁이를 포함한 미성년자 전반의 사주를 안 봐 주는 분들이 꽤 계신다고 한다.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성년자의 사주를 봐 주면 자칫 그의 운명을 미리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프롤로그밖에 안 나온 작품의 리뷰를 쓰는 일도 미성년자의 사주를 보는 일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때문에, 사실 나도 내 리뷰가 작품의 전개를 미리 결정짓는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까 싶어 이 작품의 리뷰를 쓰기 전에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의 리뷰를 쓰기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작품과 바다루 작가님의 무한한 발전을 원하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작가님과 나 사이에 개인적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투지>는 어느 역사 창작물과 비교해 봐도 고증 측면에서 밀리지 않는다. 프롤로그만 읽어도 인물들의 복식 변화, 당시의 상황 등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살아난다. 요즘 사극 트렌드는 실제 역사 속에 고증 따위 무시하는 가상의 무사 캐릭터 하나 넣어 놓는 것이지만, 이 작품 속엔 김흠순, 김품일, 죽지, 김천존 등 실제 그 자리에 있었던 무인들이 나온다. 마치 싱싱한 귤을 입에 넣고 씹으면 과육 한 알 한 알이 토도독 터지며 제주도의 자연 맛을 그대로 전해주듯이 말이다.
고증과 더불어 재미의 3요소까지 꽉 잡고 있으니 이 작품은 그야말로 ‘맛집’이다. 내 멋대로 정의한 재미의 3요소는 사실감과 중독성과 궁금증인데, 우선 사실감부터 논하자면 이 작품은 VR보다 사실감이 더욱 생생하다. 과장을 0.0000000001%(=연남생의 양심만큼) 보태서 말하자면 나는 작품 프롤로그를 클릭해서 읽은 순간 7세기의 황산벌 전쟁터로 순간이동했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문체 덕분에 중독성도 갖췄다. 바다루 작가님의 문체는 국물용 다시마처럼, 단정하고 깔끔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의 맛이 더욱 깊어진다.
게다가 이 작품엔 다음 편을 학수고대하게 만드는 궁금증까지 있다. 내 경우엔 이 작품에 대한 가장 큰 궁금증이 ‘작품 소개에서 말하는 ‘사라진 사람들’은 누굴까?’이다. 당연히 모두 이승에서 사라진 역사 인물들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이 작품만의 설정에 ‘사라진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이제부터 작품이 진행되면 알게 될 것이기에 나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즐겨찾기 버튼을 조용히 눌렀다.
대한민국 역사 창작계의 빈약한 현실을 감안하면 <투지> 같은 역사 창작물이 등장한 건 정말 오병이어보다 더 기적같은 일이다. K본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된 뒤부터, 대한민국에서 인기를 끄는 역사 창작물들과 실제 역사와의 거리는 지구와 프록시마 센타우리 사이만큼 멀어졌다. 그런 역사 창작물들에 지친 자들이여 다 이 작품으로 오라. 이 작품이 그대들을 쉬게 하리라!
이때쯤이면 내가 앞에서 언급한 ‘인연’에 초점을 맞춰, “너 작가한테 얼마 받았어?” 의심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의심하시는 일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작가님과 나 사이의 개인적 인연이 돈을 주고받을 만큼 두텁지도 않다. 나는 작가님께서 스탭으로 활동하셨던 초록창 카페 <부흥 – 역사가 흐르는 곳>의 회원 7만 명 중 하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바다루 작가님이 카페에 올리시는 글마다 질(質)이 높아서, 나는 작가님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 때마다 속으로 ‘이거 돈 주고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의심했었다. 내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바다루 작가님이 이미 출간하신 책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도 원래 부흥 카페에 연재되던 게시물이었고 난 심지어 그 글이 연재될 당시에 직접 봤다. 작가님은 왕인 박사와 어떤 여자 족장이 나오는 소설도 카페에 연재하셨었는데, 나는 카페를 탈퇴한 뒤에 그 작품을 이곳 브릿G에서 다시 보고 깜짝 놀랐었다. 지금 그 작품은 작가님이 내리셨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 <투지>는 그 작품의 전철을 밟지 않고 완결까지 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제목에 쓴 대로, 나는 이 작품 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황산벌에서 전쟁을 하고 온 듯 가슴이 뛴다. 역사 속에서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해 보고 싶은 독자 여러분들은 이 작품을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시국에 바다루 작가님의 건강을 빌며, <투지>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