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종말의 날입니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안녕하세요! 지구 종말의 날입니다! (작가: 김초롱, 작품정보)
리뷰어: 새벽마라, 21년 3월, 조회 81

안녕하세요, 제 종말의 날입니다.

현재 시간 오전 다섯 시 사십 분. 두 시간 뒤에는 아마 아침을 먹으러 갈 거고, 일곱 시간 이십 분 뒤에는 조별과제 미팅이 예정되어 있네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깨어있는 건 밀린 온라인 강의와 전공수업 복습, 조별과제 때 만들어가기로 했던 계획안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었어요. …그래야 했던 것이 한동안 접속조차 하지 않았던 브릿G에서 떠돌고 있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 편이 낫겠죠. 그러니 이러한 심신미약 상태를 감안하고 리뷰 읽으실 때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우선 소재가 눈에 띠는 소설이었습니다. 지구 종말의 날이란 매력적인 소재죠. 제 기억 중에는 영화 ‘아마겟돈’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만,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수없이 울궈먹은 소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님께서 설정하신 차별점은 인상적입니다.

종말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익숙한 혼란이 머릿속에 그려지실 겁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가 오래 남은 이유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정적으로 작살난 미래를 보며 떠올리는 건 지금껏 즐기지 못한 인생의 보상심리일 테니까요.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난을 견뎌 온 사람들이 내일을 약속받지 못한다면 느끼는 박탈감이나 혼란은 작지 않겠죠.

여기서 이 소설의 매력이 등장합니다. 127년으로 설정된 D-day는 마치 안락사를 기다리는 소년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바꿔서 표현하면 이런 거죠. ‘너 죽는대.’ ‘언제?’ ‘한 80년 뒤?’ 실제로 친구가 이런 농담을 건넨다면 웃으며 폭력으로 화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그게 진짜라고 한다면 조금 기분이 복잡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막연한 언젠가가 몇시 몇분 몇초로 규정되는 순간 타임 리미트가 생겨버리는 거니까요.

또한 저는 이 소설이 왜 소설로 쓰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종말과 재난을 다룬 장르물은 주로 영화의 영역입니다. <2012>, <해운대>. 멀리는 <볼케이노>부터 가깝게는 <지오스톰>까지. 때문에 이들은 필연적으로 소란스럽습니다. 종말 예측-인간 집단 분열-종말 도래-생존자들의 감회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에서 아무리 강렬하게 감정선을 잡아준다고 해도 패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계가 있는 감정과 정형화된 패턴 속에서 구경거리는 결국 얼마나 CG가 사실적인가 정도겠죠.

여러 악재가 겹쳐 최근의 재난 영화가 CG 시연회라는 모독을 듣는 판국에, 이 소설은 127년의 유예를 통해 임종 직전의 수기 같은 정적인 분위기를 확보합니다. 예. 이런 소재는 영화에서 오히려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난해합니다. 종말의 D-day를 갱신하는 뉴스, 그걸 보며 떠드는 사람들, 거기서 흘러나오는 감정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서사에 깔린 전제는 명확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적이고 차분한 종말은 소설로 쓰이는 게 강점이 됩니다. 다른 말로는 미디어 믹스가 힘들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수인가요. 영화화하려고 쓴 소설도 아니실텐데.

 

다만 동시에 한계점도 명확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서 드린 말씀이 소재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걸 기억하신다면 대충 이어질 이야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자기만의 캐릭터 빌드를 짜는데 스킬트리는 게시판의 정석을 긁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게임에 익숙치 않으시면 알아듣는 데 어려운 비유라고 생각합니다만, 요점은 단순합니다. 소재에 비해 사건이 밋밋합니다.

지금 상당히 혼곤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이 소설의 사건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1. 곧 망할 지구에서 각 국가들이 하는 뻘짓거리. 2. 곧 망할 지구에서 주인공이 하는 뻘짓거리. 양쪽 모두 매력적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뿌리인데도 사건의 깊이가 얕네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미묘한 공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물론 이 두 소재를 연계해서 수작을 써내는 건 프로 작가의 영역이겠죠. 그러니 둘 중 하나의 서사를 더 깊이 파고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예 주인공의 치정극을 종말로 인한 허무와 체념, 운석을 파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전가까지 가미해 도덕성을 부관참시하는 방향으로 빡세게 굴렀다면 더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전 세계 국가의 100년치 연합 프로젝트로 운석을 파괴하는 미사일 연구가 어떻게 성공하는지 또는 어떻게 실패하는지. 실패한다면 진지하게 실패하는지, 아니면 코미디마냥 주저앉는지 고민하는 것도 괜찮은 공상거리였겠네요.

불사 연구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받지 못한 과학자도 같은 맥락입니다. 매력적입니다. 흥미롭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그런 연구를 왜 했나요?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어디에선가 지원금을 받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지원금을 승인한 재단이 있을 것이고, 설사 사비로 연구를 했다고 해도 어차피 다 망한다는 마당에 굳이 그걸 발표하고서 죄송하다고 빌 이유가 있었을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내일 조별과제에 대한 현실도피로 뛰어온 대학생 나부랭이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어질 사설이 좀 고까우실 수 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니 듣기 싫은 부분은 적당히 넘기시면 됩니다.

제가 봤을 때 작가님은 소설을 쓰는 데 익숙한 분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맞춤법이나 문단 분리 같은 영역이야 귀차니즘이나 오탈자로 생각할 수 있다 쳐도, 사이비 종교와 개판난 군대 그리고 외도로 이어지는 서사가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이비 종교에 홀린 소꿉친구, 군 여간부와의 연애, 이후의 외도의 사건을 정리해봤을 때, 굳이 100몇년 뒤에 지구가 터지는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말이 됩니다. 사이비 종교는 뭘 이유로든 있고, 지위 있는 여성과의 직장 내 연애야 익숙한 판타지고, 외도는…. 말이 필요합니까?

이런 불성실한 서사로 나름의 매력이 있는 소재를 선택하셨다는 건 결국 운빨입니다. 1%의 영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99%의 노력을 해도 될까 말까한 성공에 골인해 놓고 숙련도 미달로 소재를 홀랑 날려버린다는 건,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아아아ㅏ주 질투나는 일이라서요. 말에 조금 가시가 많습니다.

하지만 귀 따가우셔도 들어야 할 조언은, 만약 정말 작가님께서 초심자시거나 서사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끼워넣은 게 맞다면, 브릿G 편집장의 시선 란에 다시 노출되는 행운은 없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소재에 대해 강조하며 칭찬을 드렸던 건 결국 독창적인 소재 외에 여러 면이 부족하다는 의미라서요. 이 정보홍수의 시대에 독창적인 소재란 그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만약 소재 선정이 운이 아니라 실력이셨다고 해도 다시금 소재 외에 다른 부분이 아쉬운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소설가를 목표로 하신다면 열심히 읽으세요. 열심히 쓰세요. 다른 사람들은 10년을 써도 옛날 소설의 개정증보판 같은 것 밖에 못 쓰는 인간들이 수두룩 빽빽이인데(저라던가!) 그 독창적인 소재를 끌어내고도 기본기가 없어서 망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꼴 못봅니다아.

역시 생각을 그냥 타자로 치니 글이 난잡하고 거칠거칠하네요. 덕분에 날이 밝았습니다. 지역이 평야지대라 뛰어들 강도 없는데, 막막합니다. 응원합니다. 다음 소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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