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27년 뒤에 세상이 멸망할 겁니다.”
내가 숨쉬는 지구가 127년까지만 이어진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연함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 아니고 자그마치 127년 뒤니까. 그런데, 갑자기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약이 개발되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소설은 멸망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127년이라는 무해한 숫자
주인공의 부모님은 127년 뒷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낸다. 아버지는 멸망 소식을 들으며 회사에 출근했고 어머니는 친구들과 그 일을 가지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127년 뒤는 너무나 무해한 숫자였다. 당장 내일의 끼니와 내 안의 생명이 중요한 보통의 사람들은 예정된 미래를 ‘없는 미래’인 양 취급했다. 왜냐하면 당장 나와 내년이면 태어날 내 자식(‘나)에게 어떠한 위협도 끼치지 않을 거니까.
소설 속 상황 설정을 보며 오늘날의 사태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카페에서 일회용컵 줄이기를 실천한 것도 잠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지금‘ 접촉으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환경오염을 부추기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환경오염의 피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일회용품을 버리는 나에게 해로운 것이 없으니까. 소설 속 상황이나 현실이나 일상의 테두리만 지키려는 근시안적 모습은 같다. 작가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덤덤하게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주었다.
과학의 아이러니
그러나 멸망 전 ’죽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희망은 무너졌다. 인류의 수명을 130년 연장하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다. 과학을 종교처럼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 건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자신들을 땅이나 바다, 아니면 머나먼 달로 이주해 주지는 못할망정… 멸망의 순간에 살아있어야 한다니! 선망의 대상이었던 노벨상의 시상식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은 장면은 과학에 대한 우리의 맹신을 비판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구와 무관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욕망이 과학을 이끌기도 하지만 과학이 욕망을 이끌기도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웰빙(well-being)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전 세계는 평화 모드로 바뀌고, 등한시되었던 예술과 철학이 주목받는다. 처음에 이 변화를 읽었을 때에는 갑작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보통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우리는 약탈과 전쟁을 일삼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하지 않는가? 그런데 유토피아라니.
작가와 비슷한 상상을 한 철학자가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유혹에 대하여>에서 과학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때를 상상한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미래에, 우리는 노동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고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과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 인간을 배신했고, 우리는 무의미한 싸움을 포기함으로써 과학보다 더 나은 인간의 정신을 찾으려고 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것이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영원한 미래를 가정했지만 소설 속에서는 미래가 짧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의 생각이 더 인간적인지를 가리며, 우월한 유전자를 골라 우주로 쏘았다. 또 각국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들을 우주로 쏘았다. 국경과 전쟁이 없는 나라라더니 실상은 더 좋은 인간, 더 좋은 나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것이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을 바라볼래
작품의 주인공은 지구가 멸망하기 127년 전 태어나 멸망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멸종한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주인공이 제일 관심있는 부분은 사랑인 것 같다. 그녀는 두 명의 여자를 놓고 고민하다가 끝내 마지막 한 명을 선택하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멸망을 지켜본다.
결국은 혜성 충돌이 내일로 다가오고, 혜성은 주인공에게 묻는다. 내일 지구를 멸망시킬 건데 너는 어떻게 할래? 주인공은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다. 청산가리로 자살하는 대신 사랑하는 여인과 마지막 이야기를 한다. 혜성이 떨어지는 마지막까지 주인공을 지켜준 것은 수영의 말이었다.
이 글이 어디선가 발견되기를.
127년이라는 숫자가 너무 이상하고 생경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2021년에 127년 만에 멸종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멸망 뒤 127년이 지나고, 이 글도 어딘가에서 발견되어 내가 읽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먼 훗날 지구가 다시 회복하고, 다시 문명이 발달하여 옛날의 컴퓨터 기록을 찾아내는 상상. 또 지구의 폭발로 컴퓨터의 부품이 우주로 날아가 외계인인 내가 읽는 상상. 어떤 상상을 하던 인류의 ’마스터피스‘가 발견되기 보다, 이 글이 먼저 발견되기를 바란다.
제 의견과 정반대의 리뷰를 지금에서야 보아서.. 제 글이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습니다..!
의견은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