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안드로이드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물입니다. 좀비에 관한 설정들은 고전적인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고요. 다만 여기서는 눈에 띄게 위력적인 좀비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좀비와의 대치에서 오는 긴장감은 이 작품에서 메인으로 다루는 소재는 아닙니다. 이야기는 그보다 깊고 내밀한 무언가, 이를테면 ‘살아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죠. 아마 좀비에 관한 익숙한 설정을 주로 사용한 이유도, 새로운 설정을 구상하고 설명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효율적인 전략이고, 결과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밸런스도 좋고요.
안드로이드의 관점에서 인식되는 인간의 성별 정보에 관한 내용이 짧게 언급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제 거의 자동으로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2017)를 연상시키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는 ‘그’와 ‘언니’라는 호칭,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기억과 감정을 주재료로 삼아 의도적으로 그런 주제를 환기하고 있습니다. 필요하고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는 인물들의 대화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간결하고 효율적인 문장을 구사합니다. 짧은 호흡의 문장에 굵직굵직한 임팩트가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예컨대 ‘눈가로부터 뺨을 가로질러 아래로 내리꽂히는 검은 줄이 내 얼굴에는 새겨져 있었다. 그건 낙인이었고, 인간과 내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다.’와 같은 문장은, 화자인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규정하게 함과 동시에 이 작품의 세계관을 날카롭게 관통합니다. 이 세계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가르는 이분법은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눌 때 한쪽만 일방적으로 경어를 사용하는 관습에도 반영되어 있죠. 물론 그럼에도 두 주인공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는 일정한 온기가 담겨 있습니다. 결말부에서 두 인물이 손을 맞잡을 때 ‘그(인간)’의 손이 ‘나(안드로이드)’의 손보다 차가웠다는 말은, 독자들이 안드로이드의 체온을 감각할 수 있도록 공들여 배치한 표현일 겁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그가 지닌 감정의 온도, 나아가 영혼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죠. 짧게 치고 나가는 문장들이 굉장히 깊은 지점을 건드리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줄거리를 살펴볼까요.
물려서 감염된다는 것 외에는 원인도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얼마 뒤 세계는 폐허로 변합니다. 사람들의 일상 공간은 감염자에게 점령 당해 폐쇄구역이 되었습니다. 폐쇄구역의 감염자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건 안드로이드뿐이죠.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얼떨결에 인간보다 우위에 서게 된 안드로이드는,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혐오하는 듯 보입니다. 자기혐오의 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음’이라는 추상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만 반응하는 감염자에게 어떤 유인도 제공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가 자기 존재를 ‘살아있음’에서 배제된 상태로 파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이러니죠. 죽은 땅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으로 그 자신을 죽은 땅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다 주인공 안드로이드에게 인간 동료가 생기고, 그의 부탁으로 둘은 폐쇄구역 안에서 한 감염자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들이 찾는 감염자는 인간 동료의 언니인데, 실은 안드로이드에게도 한 때 언니라 부르던 또 다른 안드로이드가 있었죠. 피가 섞이지 않아도, 심지어 피가 흐르지 않아도 사람이고 가족이길 바랐던 안드로이드의 인간적인 희망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언니 안드로이드는 감염으로 폐허가 된 세계에서 사람들을 돕다가 한 인간의 폭력적인 술주정에 그만 희생되고 맙니다. 규정되지 않은 죽음을 두고 당황한 인간들이 ‘사망’, ‘폐기’, ‘사고’, ‘분실’ 사이에서 적당한 이름을 물색하는 동안 주인공 안드로이드는 깊은 슬픔에 잠기죠. 독자적인 생각과 감정을 지녔지만 끝내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있을 수 없는 안드로이드에게 ‘존재’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야기의 결말은 바로 그 존재의 의미를 암시합니다. 안드로이드를 사이에 두고 포옹하는 자매의 모습은 고전적인 좀비물에서 흔히 만나볼 수 없는 톤의 감동과 낭만을 품고 있습니다. 감염자가 된 언니로부터 동료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둘 사이에 선 안드로이드는 일종의 장벽이기도 하면서 자매가 나누는 마지막 교류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안드로이드가 없으면 진심 어린 포옹은 가능하지 않고, 보다 근본적 층위에서 인간이 살아있을 수도 없죠. 마지막 장면에서 동료 관계였던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자매의 연을 맺는 모습은 그래서 더 희망적이고, 가슴 찡하게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음’의 기준은, 적어도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 짓는 피상적인 이분법은 아니었던 겁니다.
보통 이야기를 읽을 때 리뷰에 쓸 단어나 문장을 틈틈이 메모해두는 편인데,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느라 따로 메모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몰입도가 있는 작품이었는데 다른 분들이 읽을 때는 어떨지 괜히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