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코칭1. 프로포즈 도입부의 나쁜 예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다가 태풍을 가르듯 (작가: 향초인형, 작품정보)
리뷰어: 그레이 드비, 3월 4일, 조회 65

사랑 고백.

 

아!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반면 오글거리는, ‘살아있음’의 증명인지…! 이건 해당 경험의 유무에 따라 그 느끼는 바의 격차가 클 수밖에 없는 말이긴 합니다.

딱히 여기서 ‘사랑’과 ‘고백’의 정의 따위를 나열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작가라는 생물은 본인이 쓴 글이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본인이 쓰며 울고 웃었던 느낌을 독자들이 공감해준다고 느꼈을 때의 희열을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닌가요? 그 과정이 참으로 낯간지럽지만 ‘프로포즈 후 상대의 고개가 끄덕여질 때의 기쁨’과 닮았다면 나쁜 비유는 아니겠지요.

고로, 작가의 글은 그 자체로 고백이요 연애편지와 같다 우겨봅니다. 특히 그 글이 로맨스 장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고백할 때- 순서가 있을까요? 아 사실 저도 ‘선수’는 아니라 잘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은 워낙 광오 광범위해서,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반적이라 해야 할지, 보편적으로 납득이 되는 과정이나 절차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바로 “사랑해”라고 하는 경우는 정말로 번개처럼 운명적인 만남을 제외하고는 거부되기 십상이죠. 너무 진지하거나, 정말 가슴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런데 이후 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또 어떨까요? ‘당신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쌉소리를 너무 늘어놓은 것 같지만, 이 작품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읽어 나갔을 때 느낌을 굳이 비유하자면 그러했습니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가 정말 무겁습니다.

마치 설화의 내용 같습니다. 어떤 중의가 포함된, 해석이 필요한 이야기 같다는 말입니다. 보통 이런 내용을 보게 되는 건 판타지 쪽인데,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모호한 신화를 마치 구전하듯 풀어놓고 뒤에 연관되지만 현실화되는 사건들이 따라오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또한 무겁고 중후하게 혹은 비장한 느낌마저 주는 도입에 비해 뒤 내용은 정말로 발랄?하고 현실감있는, 그냥 평범?한 네 젊은이들의 티키타카 로맨스입니다. 단지 프롤로그를 포함한 1~3화에, 그들의 부모들을 포함한 어두운? 과거가 그려지는 거죠. 아예 극 전반을 흐르는 분위기가 그러하다면 혹은 장르가 그러하다면 모를까 뒤는 어쩌면, 아픈 과거가 있었으니 이제 꽃길만 걷자랑 비슷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이 있어야만 진지한 이야기가 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것들을 극복하고 나름 잘 자란 네 사람을 설명하는 데 있어 과연 그 과거의 이야기는 필수인 게 맞을까요?

 

사실 인과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만- 방식이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싶고 다른 의미에서 비장한 장르인건가 기대?하던 이들에겐 실망까지 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작가님께선 도입부에 심혈을 기울여 상징을 갈아 넣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너무 모호하다는 느낌이었고, 만약 독자들의 반응이 없거나 초반하차가 많다면 이 도입부 때문이다란 생각입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재미납니다. 아! 발랄한 로맨스, 맞습니다. 비슷한 경험(어디일까요?하핫…^^;;) 때문인지,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며,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물들 간의 대사도 산만하지 않고 적당한 균형감을 가지고 또 군데 군데 드러나는 작은 깨달음과 생각들도 작가님의 연륜 내지는 깊은 고민을 갈고 나와 가볍게 툭 던져지지만 깊이가 있는 느낌입니다.

 

‘바다가 태풍을 가르듯’ 이란 제목은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기실 바다는 태풍을 가를 수 없습니다. 바다는 태풍에 의해 갈려?지는 존재?지요. 바다가 태풍을 가른다는 건 어쩌면 불가한 일이 가능해진 거나 아니면 주체와 객체의 역전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중 해주의 아버지는 ‘바다와 편먹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무섬증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말로 아내를 안심시키던 그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바다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반면 그 곁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모든 이를 먹여 살리는 어미와 같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태풍은… 어쩌면 그 바다를 들끓게 만들고 바다로 하여금 사랑하는 이들을 삼키게 했던 그 치 인거겠지요.

 

이런 심오함이 프롤로그부터 묻어나지만 이후 이야기는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배반이라 할 정도로 초반의 무게는 단지 네 청춘의 단지 어두웠던 과거일 뿐, 아니 그것도 부모와 관련된 안타까운 그늘일 뿐 그들을 옥죄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허니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에 ‘쿨’할 수 있는 성숙의 거친 토대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후 저 넷의 꽁냥꽁냥은 그냥 편하게 흐뭇하게 즐기시면 되는 드라마입니다. 소심히 딴지를 또 걸어보자면 사실 중반 즈음 되면 누가 누구와 맺어지겠구나 예상이 되는 편이고 약한 시련? 뒤 흐뭇함만 남기 때문에 좀 가볍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가요. 원래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지 않은가요? 도리어 처음처럼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 아닐까 하여 외면치 마시고, 가벼이 따라가 보신다면 흐뭇이 즐기실 수 있는, 소소한 ‘연애 구경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편편이 긴 편이 아니라 한 편 한편 커피한잔 하며?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싶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음. 이건 말씀 드릴까 말까 하다 덧붙이는 것인데…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문학적인 기교로 쓰이는 기법이긴 하지만, 주어가 뒤로 가 가독성을 해치는 경우가 가끔 보였습니다. 끝 편까지 보면서 3번 정도 본 것 같은데, 넘어갈 만도 하지만 이게 습관이시라면 완성도에 흠집을 내는 사소함일 것도 같습니다.

 

‘호감을 가지고 호의를 표현하는 것은 기쁜 일이나 그게 어떤 목적을 지향할 때 결과가 따르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호의는 금세 적의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해주가 알 나이는 되었다.’

-에서 일부러 뒤에 쓴 ‘해주’라는 주어가 든 문장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경우입니다. 때에 따라 그런 기법이 좋게 보이는 글들도 있으나 이 작품 속에서는 한 세 번 정도, 음? 했던 것 같네요. 자연스럽고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음… 쓰다 보니 밑천이 떨어지는 군요. 잡설은 이쯤 해야겠습니다. 아닛, 여기까지 보셨어요? 어그로 끌려고 연애코칭이라고 제목을 갖다 붙여놨는데- 도대체 진짜 연애코칭은 언제 하냐고요? 후훗. 이런 외로운 영혼 같으니… 올해는 ‘뜨거운 사랑’ 하시라고 빌어 드리겠슴돠! 여기까지로 급히 맺어야겠군요. 이만! 끄읏!

 

p.s: 연애코칭1이라 이름했지만 2는 아마 안 나올겁니다. 호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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