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라는 친숙하고 낯선 욕망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과학무당과 많은 커피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햄해미, 2월 25일, 조회 90

과학이라는 친숙하고 낯선 욕망

 

  1. 작가님 더 써주세요!

이 소설이 정말 아깝다. 이 소설은 어린이 과학 서적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귀여운 ‘카페인 새’에 의해 간택받은(?) 과학무당 소녀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사이사이에 일러두는 과학 지식은 얼마나 알찬지. 작가님, 이 책을 장편소설로 발전시킬 생각은 없으신가요? :)

이 소설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저는 인물을 비롯한 소설 속 요소에 집중해 리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그만큼 인물과 장치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1. 신화에 감춰진 소망

이 소설은 무당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화에 관한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소위 영웅신화는 당대 사회현실과 민중의 소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민중은 바리데기 신화를 통해 삶의 추한 모습마저 이해해 줄 저승의 인도자를 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을 소설 속 인물이 말한다.

과학의 신(神)에 관한 이야기를 전수하러 온 김명자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움직이는 것은 당신의 마음, 저 새처럼 생긴 것들은 초상세계의 이상 거동을 감지한 당신의 마음과 의지가 현실에 투영한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 (당신은) 4차원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장구한 연결 속에 일어난 극히 미세한 진동을 감지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환란을 예지해냈고, 그 사태를 막고 싶다는 당신의 의지로 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작은 변화(진동)을 감지하는 자만이 다음 세계의 변화를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만이 특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할머니가 쓰러지시자 보살필 정도로 주위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다. 한편 시간이 날 때마다 과학서적을 탐독할 정도로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작가는 정이 많은 미래의 과학자가 이 세계를 지켜주길 원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확실한 위험을 막아 줄 예언자 말이다.

 

  1. ‘카페인 새’의 선악

또 다른 흥미로운 요소는 ‘카페인 새’이다. 2차원의 화학전개도로 이루어진 새는 과학의 원리이자 기본 요소이다. 이 존재는 주인공을 해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머리를 쪼아 주인공을 반쯤 미치게 만드는가 하면, 주인공에게 카페인을 섭취하게 함으로써 주인공을 무적의 상태로 만든다. 새가 주는 고통은 무당이 신내림을 받기 전 느끼는 신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신열과 다른 점이 있다. 신열은 정말 신과 나 사이에 위계가 있어서 내가 선택 ‘받는’ 거라면, 카페인 새는 주인공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또 김명자 박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물리에 선악이 없듯이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미래를 예견한 당신의 무의식이 재앙은 막고자 하는 의지를 내었기에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소설 속 대사처럼, 환영이 보인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환영 속 세계에서 살거나, 의사를 찾아가거나. 주인공은 의사를 찾아가는 대신 더 많은 고통(신열)을 감내하고자 한다. ‘카페인 새’가 과학 식임을 고려했을 때, 주인공은 과학 자체의 부작용을 인지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 그 자체를 마주보고 과학(카페인)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느낌으로써, 과학의 대리인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카페인 새는 우리가 마주보기 싫은 과학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검은 새이며, 어두운 면을 활용하여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파랑새이다.

 

  1. 이 전개,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 소설은 후반에 가서야 모든 내용이 이해되기에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런데… 이런 전개 어디서 봤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뒤늦게 E-Book 한 권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이다. 녹차빙수 작가님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린티 시리즈」에서 착취식 고용구조와 대학 통폐합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이번 소설을 통해 과학의 부작용과 이를 바로 잡아줄 따뜻한 과학자를 소망하는 것 같다.

 

물론, 짧은 소설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기에 압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건 단서들을 앞 부분에 띄엄띄엄 배치하고, 나중에 끼워맞추는 작가 개인의 작화 스타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과학 용어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심리 서술 부분에 과학적 사실이 설명투로 제시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전개가 더 빠르고 압축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나 역시 이렇게 쓸 수 없기에 개인적 감상은 여기까지만 적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시리즈로 많이 쓰다 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쪼록 ‘한국 도시’적인 공포소설과 SF소설을 오래오래 써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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