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타자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비읍시 이야기 (작가: 레드향20,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21년 2월, 조회 103

세상의 역사가 수없이 반복되듯, 소설 속 이야기 역시 서로 조금씩은 닮아있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유독 눈길을 끄는 글들이 있기 마련이다. 레드향 작가의 연작 <비읍시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풍경과 사건을,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너무 기이해서 평범한, 평범해서 기이한 비읍시 이야기가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갖게 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브릿G 사이트 내 해시태그와 장르 설정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종의 괴담이고 기담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현상이나 생명체도, 연쇄살인마도,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화자의 눈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웃들이 등장할 뿐이다. 이 연작소설은 비읍시라는 ‘낙후된 중소도시’ 출신의 누군가가 그곳에서 자신이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기록해 타인들에게 전하는 형식을 취한다. 소설 속, 그러니까 화자의 글 속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들의 언행은 어딘가 모르게 평균적인 예측을 벗어난 지점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들의 ‘기이한’ 모습을 무심한 시선으로 훑으며 시작해, 무심히 훑으며 끝난다. 그 시선 끝에서 모든 인물은 철저히 타자화된다. 화자가 어린 시절 만난 담임교사, 친구들, 동승한승객, 상담 직원… 타자가 타자로 남는 것, 본 소설과 ‘비읍시’가 자아내는 특유의 불쾌한 공포감은 여기서 기인한다.

 

<착한 일진>에피소드에서 화자는, 따돌림을 주도하는 A라는 학생에 대해 아주 상세히 묘사한다. 초반 인물묘사에서 그가 A에 대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이상할 정도로 집요한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시루떡 아줌마>에는 작은 일에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여성에 대한 주인공의 관찰과 그 회고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곁들여진 주인공의 사고 흐름 역시 예측을 뛰어넘어 상당히 기묘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이 에피소드에는 이런 구간이 나온다. 탑승한 버스가 급정거하며, 그 안에서 시루떡을 먹던 주인공은 사레가 들린다. 그래서 기침을 하며 뱉어낸 떡 조각이 버스 앞 유리창에 날아가 붙었을 때, 버스 승객들의 시선은 ‘시루떡 아줌마’를 떠나 ‘나’에게 꽂힌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 역시 다른 승객들이 자신을 보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주인공은, 비읍시 사람이다. 그 역시 비읍시를 이루는 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온 화자는, 자신이 살던 곳을 ‘(특이한 사람, 특이한 일들이 많은) 낙후된 중소도시’로 규정하며 그곳으로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한다. 자신 역시 도시를 이루는 타자임을 망각한 채 타인만을 끝없이 타자화시킬 때, 우리의 언어는 공포가 된다.

 

글을 읽으며 한 가지 조금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있다. 소설의 에피소드 중 많은 것이, ‘평균에서 어긋난’ 등장인물의 독특한 언행 그 자체가 공포감을 조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소설의 묘사에 따르면 이들은 아마 정신적인 질환이나 취약성을 가진 이들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미 이들을 무언가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근거 없이 두려워하는 혐오적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세상에서 소수자이자 약자의 모습에 대한 스케치 자체가 창작물의 공포요소가 될 때,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것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흡수되고 해석될 위험성이 있지 않을까. 이런 불안을 품게 되는 것은 나 역시 누군가의 타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학교는 누군가를 따돌리고 무리 짓기 쉬운 집단이라는 언급이 등장하는 <착한 일진>의 일부분처럼 여성 혐오적 언어가 걱정스러운 지점도 있었다. 물론 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작중 불완전한 주인공의 목소리이겠지만 말이다. 굳이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놀랍도록 흡인력 있고 흥미로운 작품을 더 거리낌 없이 즐기고 싶은 개인적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비읍시 이야기> 속 화자는, 출신지를 떠난 후로 그곳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모른 체해도 독자는 안다. 그 역시 그의 말대로 ‘비읍시 토박이의 기질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도시에서 우리는 타자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동시에 누군가의 타자다. 다수와 다른 무언가를 타자화하려는 욕망은, 기실 나 자신이 그렇게 폭력적으로 요약되고 그리하여 배척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있을지 모른다. 내가 ‘다른 존재’가 되는 두려움보다는, 네가 그렇게 되는 쪽이 더 간편하고 견디기 쉽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타자의 이야기를 타자의 입을 통해 듣고 일방적 해석을 멈추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나 자신이 비읍시를 이루는 일부이며, 그리하여 도시의 한 낯선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타자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다. 그렇게 우리의 도시는 비로소 공포스러운 ‘비읍시’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구체적 터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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