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Ishmael.
최고의 소설 첫 문장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것은, 허먼 멜빌의 대표작 모비 딕의 첫 문장이다. 모비딕하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아니 어쩌면 1학년. 시립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어린이 명장극장에서 본 거대한 흰 고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좀 더 두꺼운 책으로 읽어봐야지. 자신만만하게 모비 딕을 찾았다.
처음 놀란 건 책의 두께다. 당시 내 기억 속 모비 딕은 바다에서 거대한 흰 고래를 쫓다가 놓치는 선원들의 짧은 모험극이었다. 내 눈앞에 나타난 모비 딕은 웬만한 교과서 3권을 쌓은 것 같은 두께를 자랑했다. (원서 기준 모비 딕은 635페이지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난 후 끝없이 나오는 고래와 포경에 대한 설명들. 고래잡이 선원 자격증 수험서 아닐까 헛갈릴 만큼 고래와 포경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다. (혹자의 말에 따르면, 이 때문에 모비 딕은 도서관의 문학 서가가 아닌 수산업 서가에 꽂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한다.)
빨리 거대 흰 고래가 나와 고지라처럼 배를 때려 부숴주길 바라는 나는 생물 교과서 고래 편을 보는 것 같은 과학적 기술에 점점 지루해져 갔다. 그런데 읽어나가다 보니 이상하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포경에는 전혀 관심 없었던 나였지만, 고래의 생태와 이를 둘러싼 포경 산업들, 그리고 포경 산업에서 파생되어가는 다양한 산업들이 얽혀 결국에는 하나의 문명을 쌓아올리는 모습이 점점 흥미로워졌다.
배만큼이나 거대한 생물과 그것을 사냥하는 사람들. 두 개의 날줄과 씨줄이 서로 교차하며 내 상상의 공간 안에 세계를 구축해 내기 시작했다. 모비 딕을 완독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모비 딕은 자체도 두꺼운 소설이거니와, 허먼 멜빌 문체와 서술하는 방식은 이제 갓 중학생티를 벗어낸 내가 읽기에는 버거운 무게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난관에도 결국 모비 딕 마지막 장을 넘기게 만든 힘은, 고래와 포경이 만들어낸 매력적인 세계관의 힘이었다.
그때의 난 모비 딕의 이야기가 아닌 그 세계관 안에 푹 빠져들었다. 마치 헤리포터를 읽으며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하는 것처럼, 난 고래와 포경이 존재하는 세상과 그 안에서 생생한 캐릭터들과 생활했다. 그때 나의 세계에서는 인천 앞바다에 20톤이 넘는 고래들이 화물선만큼이나 흔하게 보였고, 그 거대한 괴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인천 남구 부두로 몰려들어 장대한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모비 딕의 후폭풍은 거세서, 책을 반납하고 나서도 근 1년 가까이 난 모비 딕의 세계에 살았다. 그때 내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되었느냐 하면, 지구와 달 사이에 거제도만 한 우주 고래가 살고, 인간들은 이 자원 덩어리 고래를 잡기 위해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 소설, [기고] 시간 여행의 본질과 그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위스키와 함께라면 끝없이 이야깃거리를 파 내려갈 수 있는,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한 두 번째나 세 번째 사랑 같은 소설이다.
전혀 소설 같지 않은 서두와 제목에 숨어있는 복선, 서사 중간중간에 숨겨진 반전들과 서술트릭. 거기다 설마 이것까지 고려하고 썼을까 싶은 디테일, 인간이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오지 못한 현대 물리학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해석과 인간 지성의 끝자락에 섰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에 대한 고찰까지. 고작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 안에 치킨 스톡만큼이나 농후한 내용을 농축해 넣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는,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200페이지면 단편 소설치고는 길고, 장편 소설로 따지면 짧다. 그런데 이 애매한 분량의 소설을 나는 평소의 3배 정도 되는 시간을 들여 읽었다.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본 소설의 세계관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모비 딕의 세계관에 내 상상이 더해져 바다에 사는 고래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하늘을 나는 정도가 아닌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면? 그리고 인간이 그 우주 고래를 잡기 위해 로켓을 타고 우주로 진출한다면? 하고 무한정 뻗어 나간 것처럼, 본 소설도 나의 상상력을 무자비하게 자극했다.
내 상상력을 흥분시킨 건 다음 문장이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던 전자는 어느 순간 돌연히 빛을 방출하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 순간 하울림 작가의 보디블로우가 상상력의 명치에 꽂혔다. 이건 정말 내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발상이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본의 아니게 과장을 하고 말아버리자면,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을 합쳐 시공간을 만든 수준의 발상이었다. 그 순간 폭발했다. 이제까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내 사고는 확장되었다. 나의 상상의 나라에서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시간 여행자들이 튀어나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거로 뛰쳐나갔다.
머릿속은 불난 폭죽 공장처럼 펑펑 터져나가는 중에도 내 눈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기계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발상의 도약에 와서는 기어코 나를 KO 시키고 말았다.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가 후춧가루가 되어 코에 뿌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쉴 새 없는 상상의 재채기를 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상상 폭발과 읽기를 번갈아 경험하며 지적인 단짠단짠에서 헤엄치다 보니 어느새 소설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중에 메모장을 켰다.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의 조각들을 서툰 문장으로라도 남기고 싶었다. 이것은 나의 새로운 작품의 씨앗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이제까지 내가 쓴 그 어떤 소설보다 걸작이 되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소설, [기고] 시간 여행의 본질과 그 가능성에 대한 고찰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읽어본 자로서 잘난 척을 잠깐 하고자 한다. 우선, 이 소설은 훌륭하다. 믿어도 좋다. 단편 소설의 탈을 쓴 장편 소설이고 SF 소설인 척 하는 철학 담론이며, 읽는 이를 교묘하게 속이는 추리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은 당신이 지금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갇힌 것만 아니라면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만약 창문 너머로 불타는 비행기 엔진이 보인다면… 왠만한 쌍발기는 엔진 하나로도 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이 소설을 읽길 권한다.)
물론 물리학 용어가 난무하는 서두에 발이 걸렸다면, 쓰러지지 말고 적당히 뛰어넘어라. 그리고 앞서 내가 소개한 문장만 두 번 읽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비 딕을 읽고 난 모비 딕의 세계관에서 1년간 헤엄쳤다. 그런데 이 소설, [기고] 시간 여행의 본질과 그 가능성에 대한 고찰의 세계관에서는 평생토록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이 소설의 세계관은 마법의 세계도 아니고 우주에 고래가 날아다니는 상상의 세계도 아닌, 무려 현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나의 일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버렸다. 부작용이 있다면 딱 하나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 같은 물리학 용어들이 오타쿠 빛이 감도는 세계관 설정같이 느껴진다는 것. 그런데 그러면 또 어떤가. 만약 그렇다면 그 소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