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 화성은 예로부터 지구와 가장 가깝고도 먼 행성으로 등장하곤 했다. 〈마션〉을 비롯한 SF 장르의 영화나 소설에서 화성을 제1의 개척지로 삼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지만, 다양한 작품 속에서 그 행성을 다루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이 화성을 열망했음에도 그 행성이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기도 하다. 마음의풍경 작가의 연재소설 〈화성연대기1_붉은 별의 조난자〉 또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화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독특하게도 리얼리티 쇼를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화성으로 갈 승무원을 뽑는” 텔레비전 방송인 〈마스 래스트 포〉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방송에서는 화성으로 갈 네 명의 우주인을 뽑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마스 래스트 포〉의 마지막 관문을 다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서바이벌 오디션 〈마스 래스트 포〉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인의 모습은 어떠할까. 무중력을 경험하는 우주인의 사진, 여러 행성과 위성, 별의 이미지는 과학 수업과 지면, 기사를 통해 본 경험이 있어 모두에게 친숙하다. 하지만 우주로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것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예 중의 정예만 맛볼 수 있다는 지구 밖의 세계. 그리고 한순간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며 완전한 실패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스 래스트 포〉는 언뜻 보기에 최근 유행하는 음악 오디션 프로와 마찬가지로 가볍고 화제성 있는 방송으로 묘사된다. 우주로 나가는 일이 이렇듯 흥미로워 보일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소설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오디션과 서바이벌의 방송 방식에 있어서 최근에는 여러 고질적인 문제가 터지고 있지만, 그런 유의 방송이 여전히 각광 받는 이유는 역시 누군가와 누군가의 ‘대결’ 구도에 있다. 한 사람이 반드시 승자가 되고 한 사람은 반드시 패자가 되는 이 경쟁 방식은 흥미로우며 무의식 중에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상위권에 안착하는 것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인 데뷔의 경로가 아닌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굴지의 엔터테인먼트들이 소속 연예인을 발굴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상업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형식이 SF에서 마치 ‘우주인 탄생 101’과 같은 형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이는 현재의 방송 트랜드를 특징으로 삼아 소설에 잘 녹여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화성에 가기 위한 우주인을 뽑는 데에 방송국들은 ‘화제성’을 앞세운다. 소설 중에서 “돈이 없으면 화성 가는 택시를 못 타요”라고 말하는 로빈 알렉스의 말처럼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요구한다. 이를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조금 자극적이더라도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작가는 이 두 톱니의 맞물림을 잘 이용했다. 그리하여 시작된 서바이벌 오디션은 마지막 관문의 시작부터 선체와 무언가의 충돌로 인해 큰 위기를 맞는다. BBC 방송국은 이를 내보내며 상당히 위험한 순간임에도 방송을 끊지 않고 내보낸다.
사실성을 전달하기 위한 언론의 책임 따위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도 “지금 시청률 엄청 올라가는데요”라고 말하는 방송사 관계자의 말을 통해 독자들은 이 오디션의 목적이 단순한 우주인 선발에 있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다. 생중계로 사람이 죽을 뻔한 상황이 연속되지만, 화제성을 위해 송신은 끊기지 않는다. 챌린저호와 마스I의 상황을 들며 방송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화면 안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참가자 중 한 명인 레이가 놀라운 순발력으로 선체의 잘못된 회전을 멈춘 것이다. 이 상황은 (방송사에서 송출을 끊지 않은 덕에) 전 세계로 중계된다. 그리고 레이는 순식간에 ‘스타’이자 영웅이 된다.
하지만 이 스타 탄생의 이면에는 생각지 못했던 어두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주인이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
지구로 돌아온 레이와 그의 팀은 순식간에 스타가 된다. 수많은 기자가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내는 와중에는 으레 그렇듯 한두 가지의 불쾌한 질문이 섞여 있다. 이에 대응하는 레이의 행동은 익살스러우면서도 통쾌함을 준다. 그가 “난 당신 앞에 이렇게 살아있네요”라고 말하는 이 장면 역시 현실에 대한 유쾌한 반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 이후, 팀원들이 미니버스에서 위험했던 당시의 순간을 회상하며 나눈 대화가 심상치는 않다.
레이는 팀원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는 말을 한다. 이를 통해 팀원들은 그에게 가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낀 미셀이 의문을 제기하자 팀원들은 각자 자신에게 가족이 없음을 털어놓으며 놀란다. 미셀 창, 로빈 알렉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지지만 휴와 레이까지. 〈마스 래스트 포〉에 참여하여 우연히 최종 24명으로 선발되어 무작위로 한 팀이 되었는데 그들이 모두 가족이 없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서 창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라. 그러잖아 사람들이. 화성으로 가는 편도 여행은 ‘자살여행’이라고, 미친 짓이라고.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은 아마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닐까? 스스로 외롭다는 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
심지어 남성과 여성이 두 명씩 포함된 팀의 구성을 보자니 마치 이 오디션이 거대한 ‘신인류 정착 계획’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러 정황을 보자니 〈마스 래스트 포〉는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소름이 돋아도 이상하지 않은 방송이 되어버린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가족이 없는 이들을 선발한 것이나, 화제성을 앞세워 화성으로 인류를 보내려고 하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근본부터 의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부터 〈마스 래스트 포〉 방송과 레이의 팀원에 관한 내용은 잠시 뒤로 밀린다. 그리고 제이 로빈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제이는 레이에 관한 보도 자료를 정리하던 중 그가 우주선에서 내리며 독특한 동작으로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티나’라는 이름의, 이미 사망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이와 레이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처음 비치는 제이 로빈슨의 이야기는 상당히 강렬하며 의미심장하다. 이 장면을 통해 레이의 존재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기류를 금세 읽을 수 있다.
바로 다음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레이가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말을 휴에게 털어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이전에 휴가 악몽을 꾸는 장면 역시 작가가 그냥 삽입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두려운 상황이라도, 아무리 자신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그것을 달래 주고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인물들에게 불안정을 심어준다. 이 소설은 중반부로 갈수록 ‘불안’의 감정으로 이끌린다. 휴는 자신이 로봇이 아닐까 고민하는 레이에게 “꿈꾸는 것은 모두 영혼이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레이가 ‘로봇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일종의 복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후에 등장하는 제이의 이야기는 티나와 그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티나와 제이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티나는 우주로 떠나는 길에 벌어진 폭발로 목숨을 잃는다. 적어도 제이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희생자는 지워진 채로 보험과 인수와 손익의 숫자가 난무하는 사이에서 티나를 사랑했던 제이는 “유일한 티나의 흔적”인 구멍난 동전을 간직한다. “죽음이 기억되고 의미를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던 중 만난 X라는 노인은 티나에 대해 이상한 말을 남긴다. 마치 티나가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거라는 듯.
이 노인 X의 캐릭터는 독자들에게 결정타를 날린다. 미지의 존재라는 듯 이름마저 X인 그는 소설 전반에 희뿌옇게 퍼져 있던 암시가 모두 사실이었노라고 말하는 인물인 셈이다. 노인과 제이의 대화, 그리고 암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긴 분량이 진행되었으면 좋았겠지만, X는 등장만으로 독자들에게 티나와 레이의 관계성을 주시하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결국 둘은 단순한 연관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 완전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보스톤 메카닉스’라는 회사는 로봇을 만든다. 그리고 우주로 떠난 이들의 정체는 로봇이었다. 반쯤 벗겨진 피부 사이로 보이는 인공 구조물은 로봇과 인간을 가장 극명히 대비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변환하거나 인공의 정신을 주입하는 것은 SF의 많은 분야에서 다루어지던 것이다. 그러나 우주와 인간, 그리고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해 상당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소설에서 로봇의 등장은 상투적이지 않다. 오히려 작품 결말의 반전을 가져오며 모든 일의 해답이 된다. 기계와 인간의 결합, 우주로 사람을 보내고자 하는 표면적인 목적을 드러내며 그 이면의 실험을 해오던 누군가들이 단번에 드러나는 방식은 독자들에게 소설의 맺음을 강하게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티나와 레이의 관계성은 소설을 맺는 순간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둘의 연관이 확신이 되는 순간, 레이는 티나였던 자신을 믿으며 ‘전생’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자신의 유일했던 인간 동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화성에 표식을 남긴다.
맺으며
마음의풍경 작가는 우주와 기계, 과학을 하나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데에 주저함 없는 자신감을 가졌다. 촘촘한 설정과 인물 간의 관계, 짧은 작품 안에서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우주의 광대함과 미개척지로서 화성이라는 공간이 소설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로 단단히 모아준다. 대중의 눈을 이끌고자 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내막에서 풀려나오던 이야기들은 결국 한 사람과 다른 존재의 연관을 암시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같은 사고로 죽은 누군가가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는 이야기를 통해 복선을 충실하게 수거했으며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몇몇 요소를 신선한 방법으로 재현하는 데에 뛰어난 솜씨가 있음을 증명했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 연작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그러나 세계관이 연결된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광대한 우주에 떠 있는 화성이라는 행성처럼, 어떤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독립적으로 완전한 이 소설을 읽는다면, 누구라도 우주로의 환상을 품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창조물은 이미 오래 전에 태양권을 벗어났다. 그러나 인간 자신은 아직도 지구, 그리고 그 위성인 달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여전히 지구와 달 안에 맴돌지만, 인간의 창조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태양계 밖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 마음의풍경 작가의 이 중편 연재 역시 어떤 독자에게는 더 나은 상상으로의 도약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