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합니다.. 힘들기도 하거니와 어린시절 산에서 헤매던 안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거의 등산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죠,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닌 곳에서 그당시 국민학교 다닐때 친구랑
헤어져서 혼자 내려오다가 길을 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대로 옷을 갖춰입지도 못했는데 늦가을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 지 처음 알았던 기억도 나구요, 엄청 춥고 무서워 오돌오돌 떨면서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두리번 거리다가
사그락사그락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혼자 울고 있던 저를 우연히 지나가던 어른이 동네까지 데리고 내려와주신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자의로 산을 가볼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는 몸의 무게를 못이겨 산을 오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한번씩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산을 오를때에는 힘겹고 두번다시 산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도 막상
정상에 서면 그토록 즐겁고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느끼는 것일겁니다.. 오르는 동안 시원하게 나를 덮어
주던 나무들의 냄새와 향기들이 나에게 상당한 기운을 준다는 것도 알고 말이죠, 하지만 늘 두번은 하기 싫은 등산
이니 산은 좋으나 보기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곤 하죠, 며칠 전 강원도에서도 큰 산불이 또 다시 발생하고
인명 피해까지 생기더군요, 어린시절에도 동네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보곤 했습니다.. 그시절에는 산에서 담배 태우
는 것도 금지하지 않았죠, 그러니 애써 키운 나무들이 한순간에 화마에 휩쓸려버리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언제나 우리들에게 산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늘 우리생활속에서 함께 노닐던 곳도 동네 야산이었고
삶의 중심이 되는 모든 것이 산에서 비롯되었죠, 그만큼 우리에게 산은 생활 그자체였고 지금도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산불”은 산이라는 존재가 주는 공포와 경고와 방어와 경계와 믿음을 단순한 상황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
는 듯 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린 산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산을 통해 자신의 믿음과 의지를 원하곤 하죠,
한번씩 산을 오를때마다 단순하게 쌓여있는 돌탑의 모양을 보면서 우린 삶에서 얼마나 많은 산이 주는 믿음과 의지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수천년, 수만년동안 산은 우리의 주위에서 말없이 삶을 지탱해주는
나무를 잉태하고 자라게하고 지켜주면서 인간을 보듬어주고 있던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산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과 폭력성까지 다 받아줍니다.. 흔히 우린 범죄사건에서 죽음의 공간을 택할때 늘 산을 떠
올리곤 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속에서의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침묵하고 묻어두고 잊혀
질꺼라고 사람들은 믿지만 늘 그 실체는 산은 보여줍니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이 작품의 주인공 준희라는 여인은 상당히 보편적인 인물입니다.. 일반적으로 생활에 찌들려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죠, 어느순간 자신의 지쳐버린 삶을 인식하고 자신의 태생이 생겨난 곳으로 향합니다.. 인간의 귀소본능과도
같은 느낌이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누구보다 편안하게 생각하는 할머니댁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기운을 새롭게 엮어줄 산으로 향하죠, 하지만 그녀는 생각치도 못한 죽음의 현장과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이죠,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산에 위해를 가합니다.. 그냥 내비두질 않죠, 한 남자와 여자가 산으로 옵니다.. 그리고 남자는
여인을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산으로 왔습니다.. 그런 인간의 무자비함을 준희는 목격한거죠, 물론 산도 마찬가집니다.
편안하고자 택했던 산행이 죽음으로 다가온 준희에게 산을 어떠한 방법으로 그녀를 대할까요,
보통은 작가에 대해 생각하질 않고 중단편을 읽는 편이라 작가님에 대한 세세한 기억을 가지고 읽진 않습니다..
하지만 배명은 작가님의 전작인 “폭풍의 집”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상당히 즐거웠던 기억이 나더군요, 인물이 주는
심리적 묘사와 상황적 긴장감들이 잘 살아나는 문장을 보여주시는 작가님이셨던 것 같아요, 이 작품 “산불”에서도
그런 작가의 역량은 잘 보여지는 듯 합니다.. 준희라는 인물을 통해 짧지만 임팩트있는 상황적 스릴감이 상당히 잘
보여지고 산이라는 존재와 할머니가 일러주신 그분이라는 존재의 신비감이 드러내는 진정한 산의 진실이 작품속에
잘 드러나는 것이 짧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스릴러의 감성과 긴박한 액션적 여운을 잘 살려낸 것 같더라구요, 단편소
설로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로서 보여주는 임팩트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물론 흐름 자체가 상당히 익숙하고 단순한
줄거리적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독자로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장르적 느낌이 가득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두편만이지만 작가님의 스타일이 저랑 조금 맞는 듯해서 몇 편 더 읽어보고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