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김청귤 님의 리뷰와 달리, 순전히 SF 독자의 관점에서 본 저만의 감상 포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님께 미리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주제에 대한 사견은 제 예전 리뷰들에 몇 번 언급했지만, 인간(자연지능)과 인공지능(혹은 휴머노이드)간의 우정 혹은 사랑, 인공지능의 자아 정체성의 의식과 혼란,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차별, 인공지능도 감정을 느끼는가,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졌고, 따라서 이런 것들은 꽤나 진부한 주제이고 특별히 개성적인 스토리 전개가 이뤄지거나 독특한 주제의식이 엿보이지 않는 이상 독자의 주목을 받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트럭(!)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토리 전개가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트럭이 나오면서부터는 생각지도 못 한 반전이 일어났기에 다 읽고 좀 멍한 느낌이었는데 그건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는 두 주인공 중 하나가 전직 사육사였는데, 어느 회사(블루감마)에서 준비 중인 디지언트(인공지능 반려동물)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 만난 디지언트들은 행동이나 사고가 사람으로 치면 유아 정도에 해당되는 수준이었는데요, 각 디지언트들은 각자의 주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변화해 갑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주인으로부터 잘못된 영향을 받아 문제가 있는 디지언트로 자라나기도 하죠. 얼마 전에 논란을 일으킨 인공지능 ‘이루다’처럼요.
이 소설이 테드 창의 작품 중 가장 분량이 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가는 점진적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거든요. 인공지능을 다룬 여타의 소설들 대부분이 인공지능이 처음부터 똑똑하게 표현되는 것과 다른 설정입니다. 그렇기에 <소프트웨어…>에서는 사람이 어쩌다 인공지능에게 정을 느끼게 되었는가에 대한 개연성이 살아있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디지언트와 주인들의 관계는 어린 반려동물과 주인 혹은 아이와 부모의 존재를 연상시킵니다. (여담이지만, 테드 창은 아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양육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잘 표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감탄했던 부분입니다.)
한편, 그 와중에 블루감마 사가 문을 닫게 되고 나중에는 상황이 악화돼 디지언트들이 존재 자체를 상실할 위기에 놓이는데요, 두 주인공을 비롯한 디지언트의 주인들은 어떻게든 디지언트들을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마야>와 상당히 유사한 설정이란 걸 알 수 있죠. 이 작품에서도 존재 상실의 위기를 앞둔 인공지능을 주인공이 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게 됩니다. 또한 두 지능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는 성인 간의 로맨스가 되겠네요.) 희철이 주미한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있는 점도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 데릭이 애나를 짝사랑하는 설정을 연상시킵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 데릭이 애나와 동등한 지위의 주인공이었던 반면, <마야>에서 희철은 주변 인물로 그치지만요.
케이트와 주미의 일상적인 혹은 철학적인 대화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아마도 두 지능 간의 로맨스에 개연성을 부여하려 하신 작가님의 의도 같습니다. 대화 중에 복선도 존재 하고요. 그렇다 보니 케이트는 처음부터 성인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가진 것으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어린 지능을 키운 다음 그것과 로맨스를 한다면 요상한 스토리가 되겠기에…
그래서 이 부분에서, 정말 작가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첫 번째로 아쉬운 점이 발생합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 워낙 많기에 케이트와 주미와의 관계가 그다지 인상적이지가 않았거든요. 솔직히 그냥 두 사람의 로맨스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도로 발전된 인공지능이라도 사람과 완전히 똑같진 않을 텐데 그 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던 중 트럭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스토리가 급변하게 되는데요.
주미는 트럭에 치이는데 깨어나 보니 멀쩡한 겁니다. 알고 보니 주미도 일종의 인공 지능이었던 거죠. 어떻게 된 거냐면 케이트가 주미의 뇌 속 정보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지능이었던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었고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고요. 게다가 케이트도 주미도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 속의 주미는 케이트가 만든 36번째 주미였습니다. 트럭에 치이기 전까지의 기억도 진짜 사람 뇌에 저장되어 회상되는 기억이라기보다는 소설 속에서 말하는 마인드맵, 즉 가상공간 속의 정보였던 겁니다.
예상치 못 했던 반전이라 순간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으나, 이번에도 너무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딱 그 반전에서 여운이 그치고 말았네요.
왜냐면 본인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인공지능이었다는 반전도 지금까지 여러 번 사용돼 흔한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말까지 다 읽은 뒤 이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봤지만, 인공지능의 인격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인지, 두 종족간의 로맨스를 다루고자 한 것인지, 반전으로 독자에게 충격
(인공지능이나 자연지능이나 차이가 없다는 주장)
제 의견에 마음 상하셨을 작가님께 사과 말씀 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