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슬럼프, 그 무시무시한 이름의 늪은 한번 빠지면 동아줄을 마련할 때 까지는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많은 이들은 안다. 글을 쓰는 것 뿐 아니라 일을 하는 데도, 공부를 하는 데도, 심지어는 연애를 할 때도 슬럼프라는 녀석은 밑도끝도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정말로 무서운 것은, 내가 슬럼프와 조우하고 싶지 않아도 그 녀석은 내가 무얼 하고 있든, ‘찾아온다’ 는 것이다.
맞다. 슬럼프는 찾아온다. 하지만 그게 오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자면, 가장 자신을 믿어줄 것을 기대했던 가족이 지지는 커녕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있겠다.
좋은 작품은 많다. 글을 쓰는 이는 그보다 더 많다. 그들이 쓴 글은 별보다도 많다. 어디 가서도 ‘글 잘 쓴다’는 소리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하는 주인공은, 빛나지 못한 별들 중 하나이다. 우주를 떠돌던 돌덩이는 끝내 우울증에 걸려 최면 치료를 받는다. 현실이 아닌 미래의 어딘가에서, 화자는 요양원에 가 계신 치매 걸린 어머니를 만난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그녀는 이렇게 말할 뿐이다.
공부해. 공부해. 넌 좆나 소설 못 써. 그러니까 공부해……. 배고파.
화자는 최면에 걸린 상황에서도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의식과 무의식 그 중간 어디쯤에서까지 “넌 소설 못 쓰니까 공부나 해.” 같은 말을 떠올리려면 얼마나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할까.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는, 어머니 앞에서 자신이 쓴 유서를 읊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뭐 하나 된 게 아무 것도 없어. 신춘문예나 무슨 공모전에 붙길 해, 뭘 해. 복학하려고 했는데 온전히 글만 쓴답시고 알바도 안 해서 등록금 때문에 또 휴학했고. 그 때 무슨 출판사 인턴? 그런 걸 하긴 했었는데 그것도 얼마 안 가 잘리고. 계속 딴 짓 하고 공상만 한다면서.
(중략)
엄마는 나더러 그거 하나 버틸 끈기도 없으면서 소설을 써? 차라리 가서 J.K.롤링에게 청혼이나 해라, 이 미친놈아. 이랬지.”
아마 18세의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최면 속에서 서른 살의 백수 글쟁이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그는 10여년 후의 엄마에게 찾아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 그리고 지지의 부재에 대한 설움을 유서의 형식으로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등을 돌리고 잠만 잘 뿐이다. 주인공이 현재의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리라. 나의 진심을 제대로 듣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는 어머니의 모습.
한순간 두 손을 꼭 쥔 채 울먹이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보며 진심이 통한건가, 생각하지만 최면 속 그녀는 그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다. 또 한번 진심을 외면받은 주인공은 상처입고야 만다.
성공한 사람들은 말한다. 꿈을 가져라,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라.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고도 험준하다.
물론 J.K.롤링도, J.R.R.톨킨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들 뿐 아니라 많은 거장들이 힘겨운 시절을 거친다. 그러나 그것이 아름다운 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현재 밝게 빛나고 있는 별같은 작품을 창작해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같은 작품을 써내지 않았다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쟁이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현실은 현실이다. 밥을 벌어먹고 살기에 적절치 않다 생각되면 애초에 그 길을 가는 것을 막아버리려 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혹자는 말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고. 필자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길이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볼만한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자식의 행복한 앞날을 위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것이 맞는 일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장벽들을 모두 넘어, 미래에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