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말고 리포메이션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벌레들 (작가: 최현열,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20년 12월, 조회 65

제목에 덕목이란 게 있다면 모름지기 어그로가 으뜸이 아닐까 싶다(농담 반, 진담 반이다). 물론 모두가 새 작품을 내기를 기다리고 있을 인기 작가의 신작에는 굳이 그런 게 필요하지 않다. 어떤 난해한 제목이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은 제목이든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작가가 아니라면, 내 작품을 누군가 찾아와 봐주기를 바라는 다른 의미의 순수한 작가시라면, 제목은 정말로 고심해서 지어야 마땅한 것이다.

 

[벌레들]

 

음? 혹시 추악한 범죄자들의 인성에 대한 은유이거나, 그런 악에 밟혀 신음하는 이들, 그들의 꿈틀거림이 나오는… 스릴러물일까?

아 꿈틀거림이 나오긴 한다. 거듭 말 하건데, 피투성이의 피해자가 꿈틀거린다거나… 이런 걸 기대하셨다면 아… 이걸 어째. 우리가 만날 것은 전혀 다른, 왠지 초록초록과 적당한 햇살이 비출 것만 같은 배추밭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정말로 벌레들의 이야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벌레는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라 되어 있다.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영어식으론 insect, bug +(꿈틀거리며 기는)worm류를 포함한다고 하는데… 그냥 그렇게 그렇구나~ 이해되면 좋겠지만 아주 많은 경우, ‘벌레’에는 다소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때문에 작품을 읽고 나면 음 그 제목, 의미 그대로네… 싶지만 당장의 독자 유입만을 생각한다면, ‘벌레들’ 이란 제목만 보고 그 혐오스러운 뭔가를 떠올린 잠재독자들(내 지인 하나는 ‘벌레’라는 소리만 들어도 자주 소스라치게 놀란다. 싫다고 몸을 떤다. -이 친구는 남성이다. 심지어 건장한.)이 제목만 보고 패스하셨거나… 반대로 뭔가를 기대하고 온 스릴러 팬들이 그린 네이처 느낌 폴폴 풍기는 시작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죄송하다

사실 반쯤은 재미있자고 쓰고 있는 농담처럼 가볍게 말하는 것이고, 결과를 보고 혹시 그런거 아냐? 하는 끼워 맞추기식 추론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뭔 말이냐고?

결론적으로 나는 이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고 꽤나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달린 댓글의 수나(이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에, 내 댓글 말고 딱 한 분)… 리뷰 공모가 있었는데도 마지막 날까지 한 편도 안 달렸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선가 ‘유입’이 없었다는 건데, 제목 탓이 아닐까 싶은 것. 한번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떨까 싶다.

(리뷰 등록하려다 정말 우연히 발견하여 내용 추가), 브릿G내에 ‘같은 제목’의 엽편이 하나 있다. 실랄한 은유가 담긴 짧은 글인데, 정말 짧지만 곱씹어보고는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했다.

 

 

 

각설하고

 

 

처음엔 단편 단편 유쾌한 ‘라바’같은 이야기거나 ‘벅스라이프’ 같은 이야기인줄 알았다. 사실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동 식물의 ‘의인화’는 드문 것은 아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인간을 보는 관점은 흥미로운 것일 뿐더러 필연적으로 작가의 생각이 녹아들어가 그것이 저 ‘라바’시리즈처럼 배꼽을 잡게 하는 것이든 인간 이야기의 축소판이든 평타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은 소소하게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상당히 심오한 부분을 적당한 긴장감과 의도적인듯 과하지 않은 정도로 녹여내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단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님께서 글을 풀어내는 솜씨가, 기본기가 상당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느 정도 지점에서 어떻게 긴장감을 주고, 어떻게 반전 같은 내용으로 전개를 해야할지 ‘요리’ 할 줄 아시는 것 같다는 말. 만약 공부한 적 없다면 이건 순전히 감각이 뛰어나달 수 밖에.

 

벌레들만의 세상에 정치와 사회, 종교를 뭉뚱거려, 짧지만 강한 여운이 있었다. 특히나 종교라는 이슈에서 그러했는데

종교의 힘은 강하다. 때로 무서울 만치. 잘못된 믿음은 때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후반부 도와주려는 주인공에게, 어린 벌레가 혐오를 담아 꺼지라고 하는 장면은 단순하지만, 수 없이 많은 맹목적인 신앙들이 가져온 추악한 역사를 떠오르게 했다면 과장이려나.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 이 오래된 질문은 대답이 쉽지 않다.

 

그럼 종교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것일까 아니면 그 창조주거나 절대자의 피조물들이 그가 침묵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이름을 팔면서 그 뜻대로는 살지 않는, 형식과 권위만 남은 집단의식인 걸까? 어느 쪽이든 종교라는 것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양상을 말하건데, 신의 이름을 팔아 권세를 얻은, 무소불위의 제사장 포비아를 향해 주인공이 외친다.

 

나의 뜻은 그런 적 없다!” 라고.

 

물론 당연히 신의 대언도 아니었고, 즉흥적이고 대책 없는 정의감이었고 이후 시련과 반전, 탈출까지 이어지지만

어쨌거나 ‘잘못된 것들’ 에 던지는 메시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벌레 세상에서 울려 퍼지는 종교개혁(Reformation)이랄까. 역사적으로도 현대에서도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를 욕먹게 하는 건 인간이다. 신의 이름을 파는 거짓선지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많다.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하다 말할 순 없다.

벌레사회의 메시아 신앙을 대왕바퀴인 포비아가 만들었다는 것을 코비가 전하는 장면은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건 단편의 특성상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한 것일 수도 있지만 포비아의 실체를, 그가 제사장이 되는 과정, 신앙을 만들었다는 것까지 아는 존재는 코비뿐인 것처럼(다른 설명이 없으므로) 어째서 그 외에 모든 벌레들이 포비아에게 복종하는 것일까? 벌레들의 생의 주기에서 몇 세대가 지나 그 기원을 아는 이들이 오래전에 다 죽어버렸다면 모를까, 코비가 유일한 목격자요 전말을 아는 증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뜬금없다. 시공간적으로 다소 과장인 셈인데, 때문에 좀더 개연성을 주기 위해서는 포비아의 실체를 아는 세력이 코비 외에도 존재하고, 레지스탕스처럼 반기를 들려한다 까지 가야할 텐데 그렇게 이야기를 풀기엔 다소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덧붙여 주인공의 빠른 태도 전환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배추 잎에 붙어 하루하루 연명이나 생각하던 순박했던 민달팽이 럭키가 처음 메시아로 추대되고, 불의에 맞선다는 목적의식이 갑자기 생겨나 권위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급격히 말투나 행동거지가 바뀌는 부분은 단편의 특성상 속도감 있는 전개가 필요하기에 넘어갈 만도 하지만… 조금 작위적인 것도 같다.

그러나 ‘방주’와 ‘약속의 땅’ 으로 가는 여정에 침묵하는 럭키는… 이전에 나서던 모습과 반대로 자신의 어리석었던 행위를 내려놓고 마치 구도나 섭리를 기다리는 듯한(본인은 그냥 우울했던 것 같지만^^;)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이 특히 아 그게 그거야? 하는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꽤나 근사한 분위기랄까, 앞선 모든 장면들의 흠결조차도 한번에 싸 안고 가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간만에 본 괜춘한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그런 단편에 완성도 타령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일지도. 앞선 딴지는 그만큼 본인은 이 작품을 좋게 보았기에 오히려 아쉬움에 쪼잔한 투덜거림이었던 걸로 이해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문득 작가소개를 보니, 이 분 실제 요리사라고…? 어디서 칼 들고 계실 진 모르지만 틈틈이 떠오른 상상들을 글이라는 재료로 다지고 볶고 끓이고 계신 건지도? 그래서인지 글의 후반부 탈출 장면, 식당 싱크대? 하수구에서 벌레들을 발견하고 살충제를 뿌리는 장면이… 본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추측해보며 재미가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즐겁게, 추천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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