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동아리는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모임이자 때로는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다. 만약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들에 관한 동아리가 있다면, 때로 기쁜 마음으로 가입해서 열띤 활동을 하기도 한다. 새 학기가 되면 부원 모집을 위해 홍보 활동을 해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만히 있어도 학생들이 몰려와 면접을 보고 부원을 뽑아야 하는 동아리도 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동아리, 그렇지 않은 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도서부, 학생회 등 각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역시 존재한다.
이렇듯 다양한 동아리 활동은 팍팍한 학교생활의 윤활유가 된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는 순간마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몸담았던 동아리의 폐부는 가슴 아픈 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떻게든 신입 부원을 모집해서 동아리의 생명을 이어가는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그다음 해에 사라지는 모임도 부지기수. 폐부를 눈앞에 둔 동아리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을까. 신문부, 타 동아리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원을 끌어오려는 다문고의 다례부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음 둘 곳이 사라진다는 것
다문고에는 다례부가 있다. ‘다도’라는 말을 더 많이 들어보았을 우리에게 ‘다례’는 조금 생소한 말이기도 하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아리. 조금 생소하기도 하고, 공부를 피해 잠시나마 몸을 담을 곳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격식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가입을 꺼리는 학생들이 있을 것 같다. 예절과 법도를 잊어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일분일초를 아까워하며 다음날을 향해 가장 바쁘게 달려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에서 다례부는 조금 생뚱맞아 보인다. 하지만 이 동아리 역시 지키고 싶어 하는 이가 존재한다.
다가인은 이 동아리의 마지막 학생이다. 4월 11일부터 시작되는 동아리 설명회를 통해 신입 부원을 모집해야만 살아남는다. 존폐위기 속에서 가인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신문부’였다. 동아리에 소식을 실어주는 신문부에서 교내 신문에 다례부에 대한 이야기를 써준다면 그보다 괜찮은 홍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기자가 와버리는 바람에 다례부의 취재는 가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흥미진진해진다.
진엽은 가인과 대립 구도를 세우는 묘한 인물이다. 가인이 신비한 마술과 같은 차 묘기를 보여줘도 심드렁하게 그 안에 있는 트릭을 밝혀낸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리는 동안 트릭을 알아내려고 나는 것만큼 멋없는 짓이 없”다는 가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까칠하고 약간 무례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다례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그런 진엽의 캐릭터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한다. 바로 ‘다례부가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에 관한 부분이다.
진엽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례부장인 가인의 말에서 트집을 잡는다. 말차의 한자와 우전차의 수확시기에 대한 첫 번째 논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올린 건 진엽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파란은 수상한 점을 포착한다. 파란은 조금 독특한 ‘의뢰 동아리’ 소속이다. 자신의 동아리가 어떤 곳인지 증명이라도 하듯 파란은 가인이가 생각하는 진짜 ‘동아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을 편다. 그리고 이 부분은 소설에서 반전이자 변곡점이 되는 부분이다.
가인이는 혼혈이었다. 기존의 동아리 이름인 ‘다례부’를 쓰지 않고 ‘다도부’라고 소개한 점. 그리고 말차의 한자를 일본식으로 말한 점, 한국의 우전차 수확시기에 맞지 않는 날짜를 말한 점 등을 보아 가인이 일정 기간 일본에 거주했거나 가족 중 일본인이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인이의 출결 상황을 토대로 가인의 가족 누군가의 죽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은 꽤 매끄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가인이의 실상에 대해 하나씩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진행된다. 가인이에게는 실례가 되는 방법이더라도 파란과 연은 이에 대한 추리를 계속해 나간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추리가 아닌 결말부 장면의 묘사를 통해 정답을 제시한다. 가인이는 결국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다례부를 지키고 싶어 했으며 자신이 마음을 둘 곳을 찾기 위해 동아리를 끝까지 살리고자 했다. 이런 결말은 무난하게 다례부, 아니 다도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신입 부원을 데려오며 해피엔딩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읽는 데에 불편함이나 거리낌 없이 진행된 작품이었다.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소설을 요약하다시피 정리한 이유는 정확히 밀도를 계산한 것처럼 처음, 중간, 끝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 부분의 이야기가 뭉쳐 있지 않고 어느 한 부분의 이야기가 성글게 엮이지도 않았다. 글로 한 번에 정리하는 데에 어색함이 없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다만 몇 가지 이 글을 쓰는 데에 조금 더 고려했으면 좋겟다 싶은 사항들이 보인다. 작가는 대체로 그 모든 것에 대해 자신만의 방향으로 적절한 답을 내렸다. 그럼에도 독자로서 이 소설 안에서 더 바랄 수 있는 진행상의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민을 덜어내는 두 번째 잔
“두 번째 잔부터는 고민을 덜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독자로서 작가에게 줄 수 있는 두 번째 잔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소설에서 보완되어야 하는 주된 지점은 ‘파란’이라는 인물에 맞춰져 있다. 파란은 가인을 돕는 인물이자 의뢰 동아리 소속이며, 작품의 초반부터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하다가 결말에서는 추리의 끝을 맺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굵직한 역을 맡는 조연이지만 파란의 설정에는 궁금한 점이 많다.
첫째로 파란의 소속 동아리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파란의 동아리는 ‘의뢰’를 들어주는 모임이다. 이 동아리 역시 소설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폐부의 위기에 처해있다. 독자들은 파란의 동아리가 무엇일까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그 동아리’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모호함’에 일조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란이 추리했던 것처럼 독자 역시 추론을 하며 소설을 읽는다. 하지만 파란의 동아리에는 그 ‘이름’이 없다. 의뢰를 대신해서 들어준다는 동아리의 정보는 신선하지만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이 동아리에 꼭 맞는 이름이 없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에 대한 갈증을 준다.
물론 이 작품은 파란의 동아리가 아닌 가인의 동아리에 관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파란의 동아리 역시 소설에서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이 부분을 명확히 해 두어야 한다. 심지어 그 동아리는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무엇이든 들어드립니다’를 모토로 삼는 부서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덧붙여 파란이 소설의 후반에서 자신의 동아리가 싫다고 말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 장면에서 파란의 동아리에 관한 추가적인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건 어떨까. 파란은 어떤 일들을 겪었길래 자신의 동아리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를 더 확장해 보면 다문고의 동아리에 다례부와 ‘의뢰부’ 등 다른 학교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신선한 동아리들이 많다는 것을 아예 소설의 큰 특징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학교의 신비한 동아리들을 배경으로 한 연작 소설을 쓰는 것도 좋은 방향이 될 것이다. (독자로서 기대가 되는 바이기도 하다.)
둘째로 파란이 가인의 출결을 파악한 부분에서도 보다 그럴듯한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본래 다른 학생의 출결 사항을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자칫하면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파란은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애”를 통해서 어려움 없이 가인의 결석 일자를 자세히 조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지나치게 매끄럽게 해결된다. 그렇다면 ‘새로 들어온’ 의뢰 동아리의 부원은 무엇을 하는 학생일까. “그런 쪽을 잘한다”라는 말은 독자들이 이 학생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 학생이 ‘꼼꼼하고 매사에 진지한 성격’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학급 임원으로서 ‘서기’를 맡고 있다는 설정을 하면 어떨까. 몇몇 학교는 출석부를 서기가 관리하기도 하니 신입 부원과 가인이 같은 학급의 학생이라면 출결 사항을 몰래 확인하는 것도 쉬울 것이다.
또는 가인이 대단히 성실한 학생이고 ‘그 학생’이 ‘야간 자율학습 출석부 담당’일 수도 있다. 매일 자습에 빠지지 않던 가인이 일주일을 내리 결석했다면 자습 출결 사항 역시 공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파란의 동아리에 새로 가입한 학생이 ‘출석부’에 관해 학급에서 담당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조금 더 출결 파악이 쉽고 생활 기록 사항을 몰래 보는 일보다는 독자들에게도 합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런 세부적인 사항을 소설에 삽입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전반에 걸쳐 ‘가인’의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작품을 미스터리하게 만든다. 독자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가인의 뒷이야기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한 챕터나 부분을 할애해서 실제 일화를 짧게 제시해 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구성으로도 충분히 여운이 남는 맺음이지만, 가인의 이야기가 작품의 중간중간 삽입된다면 독자들 역시 아이들의 추리로 알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가인의 ‘진짜 이야기’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 편하게 있을 상대가 생긴다는 것
이 작품은 마음을 둘 것들이 사라지는 지금의 우리가 학창 시절을 아련하게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단편이다. 한 학생에게 모든 친구가 쭈뼛거리며 위로를 보내는 결말은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도 마음 편하게 있을 상대가 생긴다는 것은 이런 장면들의 연속이 아닐까.
차 한잔으로 인생의 역경을 뚫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얼어붙은 한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는 있다. 또는 한 사람이 기대어 쉴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을 데울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학생들의 동아리를 통해 그려낸다.
가인의 마지막 대사처럼 그저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듣지 못한 지도 오래된 당신에게,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작가는 이 겨울, 온기를 건넨다.
마음 편하게 있을 상대가 생긴다는 건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