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정을 최대한 단순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고, 손해를 입거나 신체적인 피해가 있으면 화를 냅니다.
슬픔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감정이 있음에도 실제로 표현하는 슬픔은 객관화, 혹은 정량화되어 온라인에서 평가받기 일쑤입니다.
‘이런 상황이면 슬플만 하지’ ‘이 정도로 슬프다고 하면 오버 아닌가?’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감정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네요.
‘고딕의 밤’은 슬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 있어서 인용하자면 ‘애절’한 슬픔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지요.
문학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직접적인 표현을 선호하는 서양권의 작품들을 보면 사건과 행동에 대한 묘사를 강조하고 동양권의 작가들은 심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 같더군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독자분들마다 그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여성은 활기가 넘치는 놀이공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러 다니고 있습니다. 6세 이상의 아이나 조카가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는 놀이 공원은 장비 없이 하는 암벽 등반 만큼이나 체력 소모가 큰 데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죠.
게다가 이 엄마, 산더미같은 집안일과 여러 고민거리에 정신이 없습니다. 힘겹지만 보람도 있었던 출산을 떠올리며
놀이 공원의 호러 이벤트를 바라보고 있는데…
대체 이 여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놀이 공원은 가련한 엄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이 작품은 “뭐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초반부터 아주 천천히 긴장의 끈을 당겨갑니다.
한계까지 당겨진 팽팽한 끈은 언제 끊어질 지 모르는 긴장감을 독자에게 남겨두고, 예측된 결말을 향해 고백하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무엇보다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식이 매우 뛰어납니다.
예전에 일본 작가들의 범죄 미스테리물을 광적으로 찾아보던 때가 있었는데, 미지의 범인을 추적하는 짜릿함은 없지만, 섬세한 묘사로 긴장감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좋았더랬지요.
이 작품 또한 독자의 눈을 잡아두는 힘이 뛰어나네요. 특히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애절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을 뜻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글을 읽어보시면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작품을 끈적하게 뒤덮고 있는 슬픔, 몸의 고통보다 더 끔찍하고 영원히 나아지지 않을 영혼의 아픔은 온전히 글로 표현될 수 없겠지만,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와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상상해보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두에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만, ‘고딕의 밤’에서 놀이공원을 찾은 이 여인의 슬픔은 어떤 감정일지 곱씹어보다 보니 제 아랫배 한 쪽이 쑤시는 듯 아파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감정을 ‘절망과 한이 담긴 슬픔’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독자분들마다 느낌은 다를 겁니다.
너무나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을 담담한 필체로 잘 그려낸 작품이고, 제목에 홀려 클릭한 것 치고는 ‘고딕’스럽지 않았지만 읽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는 글입니다.
완독하고 나면 옆에서 자주 놀아주지 못한 아이와 연락을 잊고 살았던 엄마와의 통화가 새삼스레 마음에 남는 독자분들이 계실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