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리뷰는 해당 작품의 출간 도서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이시우 작가의 소설 『과외활동』은 나에게 새로운 속도감을 맛보게 해준 책이었다. 출간작인만큼 온라인보다는 종이책의 느낌을 좋아하기에 출간 도서를 구매해 읽게 되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하늘색의 청량함은 이 장편의 분위기를 읽고자 하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언뜻 보기에 폴리스라인처럼 죽죽 그려진 노란 분필의 기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품의 익살스러움을 표현한 듯하다. 『과외활동』이라는 다소 얌전하고 교육적인(?) 제목과 달리 표지의 중앙에는 오토바이를 탄 소년이 등을 돌린 채 질주하려 하고 있다. 독자로서 이 표지를 본다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순전히 흥미의 발현에 이끌려 읽게 된 이시우 작가의 장편 『과외활동』은 나름 신선한 시간을 안겨 주었다. 손에 땀을 쥐는 어른들의 스릴이 없더라도 소설 속의 아이들은 충분히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액션은 넉넉히 강렬하다. ‘청춘’이야말로 가장 스릴있는 단어가 아닌가. 최근 읽은 이시우 작가의 단편소설 「솔의 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이하 「솔의 눈」)에서 느낀 첫인상과 상당히 닮은 작품이었다.
‘청춘 액션 스릴러’라는 이 작품의 분류에 공감한다. 뜨거운 청춘과 차가운 액션, 팽팽한 스릴이 소설을 휘감고 있다. 어디부터 이야기할까. 우선 두 주인공의 만남부터 시작해보자.
시체로부터 시작된 만남
등굣길에 사람의 시체를 만나는 것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재학 중인 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의 시체를 보는 일은 다소 기괴한 일이다. 아무튼, 이영과 김세연의 첫 만남은 그 기괴함 안에서 시작되었다. 예쁘장한 미모로 학교에서 인기를 꽤 얻고 있는 세연과 왕따를 당하는 이영의 만남은 그저 보통의 먼치킨 캐릭터와 일반인의 조합이 아니다. 둘은 어딘지 모르는 결합점을 가지고 있다. 마치 운명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영과 세연의 캐릭터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딱 들어맞는다.
세연은 어디어디 올림피아드에서 무슨무슨 상을 받아 이곳저곳 신문에 실린 바 있는 소위 ‘영재’에 해당한다. 이영은 그저 몸은 굴릴 줄 아는 꼴찌 학생이었지만, 일반적인 미디어나 콘텐츠에서 다루는 ‘지질이’는 아니었다. 세연의 머리, 이영의 신체 능력이 합쳐지면 그야말로 최강의 콤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 둘이 어른, 그것도 ‘살인 동호회’에 맞설 수 있을까. 만약 이 소설을 읽기 전, 위의 질문을 받았다면 시큰둥하게 ‘에이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건 좀’이라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사기 캐릭터’ 김세연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특히 세연의 첫 등장이 마음에 들었다. ‘CCTV’를 조작하는 인물들은 예로부터 범죄 스릴러나 SF에 종종 등장하곤 했다. BBC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존 왓슨의 이동 경로를 CCTV로 파악한 후 유인한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 「원통 안의 소녀」에서도 주인공 지유의 이동 경로를 누군가가 마치 CCTV를 통해 알아내는 듯한 초반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악의를 갖지 않더라도, 적의를 표현하지 않더라도 남의 이동경로를 보는 데에 CCTV만큼 좋은 것은 없다. ‘감시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카메라’가 없는 곳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연’은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킹’은 4차산업혁명도 케케묵은 말이 된 지금에 가장 효율적이며 위험한 기술이다. 거리의 CCTV를 모조리 해킹한다면 누군가의 이동경로를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한 사람의 개인정보와 검색기록까지 캐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외활동』의 세연이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위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자. 오히려 이영과 세연의 결합은 범죄 조직 소탕에 최적화되어 있으니 그들이 이루어낼 ‘정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이 책을 펴는 것이 옳다.
아이들의 판타지
세연과 이영의 일상에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삶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단조로움이 없다. 마치 학교야 있든 없든 우리는 갈 길을 간다는 듯 보이기도 한다. 둘은 소설의 초반을 지나며 ‘판타지 세계’에 입문한 것처럼 잠시 학생의 신분을 미루어 놓는다. 그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아마도 살인 동호회 회원의 ‘카페’에서 그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가 두 학생을 다른 층위로 옮기는 하나의 관문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현실에서 진행되는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두 아이는 분명히 자신이 알던 ‘학교 안’의 세계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겪은 후 돌아온다. ‘갔다가 돌아오기’라고 볼 수 있는 이 전개는 판타지가 없음에도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에 발을 담금으로써 간접적으로 현실과 다른 느낌을 내는 데에 성공한다. ‘과외활동’은 학교 밖의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판타지는 학교 밖에서 벌어진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들의 동호회라니. 어른들이란 다 그런 것인가. 다단계처럼 타인을 범죄자로 만들고 살인에 가담하도록 하는 이 특이한 모임의 구조는 ‘선생’이라 불리는 존재로부터 출발했다.
범죄 조직의 두목이 ‘선생’이라는 것도 꽤 재미있는 설정이다. ‘선생’은 흔이 ‘많이 배운 사람’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죄 조직의 두목’을 선생이라 부른다. 학교의 공간이 아닌, 교외의 선생은 상당히 잔인한 존재이며 일반적인 선생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그의 아래에서 일한다. ‘선생’이 가진 권력은 실로 막강하다. ‘두목’이 아닌 ‘선생’이라는 어감이 조금 부드럽게 들릴 수는 있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연과 영은 이 기묘한 살인 동호회를 우연히 접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CCTV 관리자로부터 찾는다. 그에서 시작된 하나의 실타래를 당겨보니 거대한 실뭉치가 등장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판타지에서 어른은 여전히 ‘선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에게 배울 점이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를 통해 일종의 위치 전복을 느낄 수 있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정의는 ‘선생’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의 세연과 영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범죄 조직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밝혀낸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는다. 『과외활동』은 갔다가 ‘다른 곳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세연이 굳이 학교로 다시 가지 않은 건 소설의 결말이 비단 ‘돌아오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이들은 충분히 성장했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과외활동’을 통해 배웠다. 세연이 영을 성장시킨 것인지, 영이 세연을 성장시킨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 그 둘을 모두 성장시킨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둘의 힘으로 학교의 안에서 알 수 없던 정의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소설 자체의 흥미
인물과 사건을 제하더라도 이시우 작가의 문체 자체에서 오는 속도감을 빼고는 이 작품을 논할 수 없다. 이시우 작가는 스릴, 범죄, 액션에 걸맞는 문체를 쓸 줄 아는 작가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점지해 종이에 풀어낼 줄 안다. 앞서 언급한 그의 단편 「솔의 눈」은 사실 짧은 작품인 동시에 강렬한 탓에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얼개를 면밀히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충분히 풀어준 작품이 『과외활동』이었다.
처음 작품을 폈을 때부터 책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봤던 어느 작가보다도 ‘빠른 이야기’에 최적화된 문체였다. 거칠고 신나고 활달한 문장들이 영과 세연이 가는 길목마다 남겨져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장면에서는 그에 맞게 잔인한 문장으로, 세연과 영의 묘한 기류를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볼 때는 섬세한 문장으로. 이시우 작가는 살아있는 문장이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설을 쓴다. 그 굴곡과 속도를 정하는 과감한 결정이 탁월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에서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여느 장르소설을 읽을 때면 종종 장면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보이곤 하는데 『과외활동』 역시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리며 읽으면 좋다. 나는 주로 이런 소설을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는다. ‘그림’처럼 눈앞에 장면이 보이는 소설을 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대화나 1인칭으로서의 서술에서 구어체를 생생하게 구사하고 인물의 움직임과 행동, 전체적인 상황의 테두리가 돌아가는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심리 묘사까지 잡았다.
이 소설은 영상과 같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읽는 데에 신나지 않는 순간이 없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다면, 표지에 그려진 오토바이를 탄 소년이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리고 출발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작품이 ‘질주’와 같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마음에 감추어진 질주 본능을 일깨우는 소설 『과외활동』을 읽으며 멈출 수 없는 아이들의 여행에 동참하는 것은 대단히 시원한 경험이었다. 드릉드릉. 오토바이의 시동을 거칠게 거는 학생들의 날카롭고 유쾌한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니 당신도 나와 함께 질주하기를 바란다. 학교 밖의 판타지에서. 과외활동의 언저리에서. 잠시 현실은 던져두고 말이다.
이 거부할 수 없이 푸르고 단단한 아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