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주인공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흔히 이중인격, 다중인격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몸은 한 사람인데 그 안에 둘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는 병이며 통계상 90퍼센트 이상이 여성 환자라고 합니다. 대게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작용중 하나라고 합니다만, 또다른 인격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풀리지 못한,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려 들기에 그들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입니다.
작중 주인공의 다른 인격인 혜수는 상당히 자기파괴적입니다. 주인공의 인생을 말아먹으려고 아주 작정한 모습이지요. 철천지 원수의 몸을 차지한 것만 같습니다. 상처를 입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튀어나와 제멋대로 행동하는 혜수, 그녀는 제멋대로에 분노와 욕망의 인간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늘 휘둘리기만 하는 주인공의 감정 발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 대한 자책과 슬픔과 두려움. 분명 제 잘못이 아닌데도 내심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여기기에, 혜수는 주인공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잘 살펴본다면 혜수는 마냥 이드의 집합체라기엔 생각보다 냉정합니다. 오히려 혜수가 주인공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고 있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죽고자 하면 혜수는 무조건 주인공을 구합니다. 해를 입으면 주인공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혜수는 가만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과하게 둔하고 순하게 보이는 건 그런 혜수가 대신 분출을 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전부 혜수고 같은 몸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도리어 죄의식 없이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인간이라면 대게 품게 되는 성욕마저도 혜수는 가져가 제멋대로 다 풀어버립니다.
순수함. 주인공은 혜수에게 인간적인 온갖 것을 다 빼앗기고 그것만 남은 껍데기 같습니다. 시작부분부터도 25세임에도 아직 6세쯤의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듯한 모습이지요. 단지 파괴하려 한다기에는 반대로 과보호의 성질을 띄고 있는게 아이러니입니다.
혜수의 사고방식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부분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 같은 이미지를 안겨주는 것이 이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어코 혜수는 무려 19년이란 시간을 빼앗고 말지요. 거의 20년에 달하는 시간입니다. 자기혐오와 자기애. 그 사이의 어딘가. 과연 혜수가 송두리째 감춰버린 19년은 증오로 인한 시간이었는지, 보호를 위한 시간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주인공을 심하게 고생시키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주인공을 보호하려 드는 것도 혜수이니 말입니다.
벌써 1부가 끝나고 2부에 접어들었는데도 소설은 이제 막 시작한 느낌으로 흥미진진합니다. 오히려 갈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지니 다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