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코코아드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던가.
괴담, 호러, 기이한 이야기의 원천에 목마른 글쟁이 한 명이 스스로 그런 글을 퍼올리기 위한 우물을 파고 있다.
이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온 작가님이다. 스토리의 정형적인 구조를 갖춘 글도 다수, 거기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형식의 [규칙괴담]이나 [리포그램 형식]의 단편에도 도전하시는 모습은 여러모로 강력한 자극을 준다.
이번에 접하게 된 엽편 모음집 AM 66.6Mhz는 작가의 그러한 도전 중 하나이며,
작가 본인이 목말라서 판 우물 덕분에 지나가던 객인 나 역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좋은 우물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참 구구절절하게 짓기도 어렵고 간결하게 짓기도 어려운데, 작가가 붙인 제목이 참으로 적절하다.
불길한 숫자의 주파수에 맞추면 들려올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그런 주파수를 맞춰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같은 괴담 애호가를 자석 앞 철가루처럼 끌어당기는 제목이 아닌가.
그래서 읽었다. 재밌었다. 엽편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물이 충분히 차있었다.
괴담에 대한 내 목마름을 해갈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엽편괴담에서 바라는 묘미를 느꼈다.
첫 엽편은 거스러미에 대한 이야기.
손끝에 일어난 거스러미, 가만히 놔두면 칠칠치 못해보여 누구라도 발견한 이상 신경쓰게 된다.
성질 급한 나 같은 사람은 잡아떼버리기 일쑤다. 엽편 속의 사람도 그러하고자 한다.
자, 얼른 떼고 잊어버리는거야.
찌ㅡㅡㅡㅡ이이이이. 손가락 한 마디,
어어? 찌——-… 손가락 두 마디,
찢어지기만 하곤 떨어지지 않는다.
뭐, 그래. 어쩌다 고약한 거스러미를 만났구나.
단숨에 확! 떼버리면 되겠지. 하나, 둘, 셋,
쫘아악!
ㅡ… 거스러미는 여전하다.
괴담은 맛있으면 그만이다.
레스토랑의 일품 메뉴가 아니다.
뭐 어떻게 구웠네, 재료를 양념에 재웠네, 곁들인 채소와의 조화가 어떻네,
그런 품평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괴담은 길거리 호떡인 셈이다. 일단 달고 기름지면 된다.
호떡을 180도에서 튀겼든 220도에서 튀겼든 홀라당 태웠든 (태운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먹는 사람이 맛있으면 그만이다.
난 이 집 호떡 참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맛있다고 여긴 부분은 ‘능청스러움’이다.
괴담은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일 때 맛이 제대로 산다고 생각한다.
흔히 생각나는 괴담의 소재 대부분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떠올려보라.
” 학교, 병원, 거울, 머리카락, 골목길, 바다ㅡ… ”
헌데 그 믿었던 일상이 비틀리면서 자아내는 낯선 감정이 바로 괴담의 맛국물이다.
문제는 그 맛국물에 이미 혀가 절여진 독자들의 미뢰에서 MSG를 걷어내고
또 ‘맛있다!’고 느끼게 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그러려면 길게 끌지 않아야 하고, (호떡이 아무리 맛있다한들 30분 걸리면 짜증난다!)
내가 아는 그 맛이라야 하는데 거기에 더한 약간의 특별함 (바삭하다, 씨앗이 들었네, 계피를 첨가했네… 등등)
이 있다면 완성이 아닐까 한다.
앞서 언급한 <거스러미> 엽편이 내겐 그러한 괴담이라고 느껴졌다.
분량은 엽편답게 글자 크기만 조절하면 손바닥 안에 들어올만하다.
그 안에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겨나고,
그 균열이 쩌적쩌적 갈라지더니 마지막엔 와장창 부서진다.
빨리 나온 호떡을 식기 전에 호호 불며 먹었더니 익히 기대했던 그 행복함,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터지는 특별한 식감.
좋은 호떡괴담이다. 엽편괴담은 이 맛이다.
이렇듯 작가는 일상 – 비일상의 간극을 전자가 도체 안에서 넘어다니듯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
능청스럽다는 말은 그런 부분을 두고 감히 평해보았다. 괴담적 처리에 서툴게 되면 독자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안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스러미가 처음부터 그 모양이라면 독자 누구도 자신의 거스러미는 그럴 일이
없다며 반발하지 않을까)
이 모음집을 아마 단숨에 읽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도록 친절한 어휘와 분량으로 쓰여져 있고,
그 주파수에 맞춰 송출되고 있다. 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난 이 주파수에 한동안 맞춰놓을 생각이다.
물론 각기 다른 이야기의 모음집이니 중간 중간 살짝의 아쉬움도 있다!
두 번, 세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혹은 그러고도 ‘내 해석이 맞나’ 싶은 엽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는 과감하게 작가에게 단문응원이든, 쪽지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소통해보자.
“호떡이 너무 달아요, 너무 탔어요,” 그런 말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작가임이 분명한 분이다.
이 주파수가 송출되는 한, 그런 피드백을 통해 작가는 더욱 괴담의 대가로 가는 길에 박차를 가할테니까.
오늘 남은 밤,
66.6Mhz의 주파수에 맞춰놓고 작가의 필명처럼 달콤한 꿈을 꾸려한다.
괴담 읽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