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소설처럼, 김춘수의 시처럼.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이 세상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증명 (작가: 반도, 작품정보)
리뷰어: 향초인형, 20년 10월, 조회 77

이 소설을 처음 읽고 난 후의 감상평은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세카이계 소설’이란 말도 처음 들었고 소설의 전개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장르가 일반과 기타로 설정되어 있어 평범하고 문예적인 글일 거라는 생각을 깔고 그래도 어딘가 참신할 전개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일단 독특한 캐릭터인 전학생(이 주인공은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확실히 밝히지 않는다)과 평범해 보이는 화자와의 만남이어서 둘의 신분과 나이가 학생이라 청소년소설이나 성장소설이겠다는 짐작을 했다.

전학생인 ‘이세상’은 이름이나 정체를 스스로 밝히기를 거부하고 부르는 상대방에 의해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받길 원했다.

이 까다로워 보이는 학생이 자연스레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보통 이름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최초 관문인데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주인공이 애초에 세상과의 일반적인 관계맺기조차 거부한다는 점에서 어른의 시각으로 판단한다면 문제아의 부류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자원하여 도서위원이 된 화자인 ‘나’도 소극적이나마 교실이 아닌 집단 밖의 좁은 공간인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수업시간에도 책을 읽고 있어 두 아이가 둘 다 문제아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전학생과 화자가 공통된 친밀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무리없이 보였다.

전학생을 통해 세카이계 소설에 대해 알아가는 화자의 심정은 독자인 내게도 새로운 소설 장르에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게  유도해갔다.

수영선수였던 화자가 자신이 속했던 세계의 비리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세계내 모순과 부조리를 직면하게 된 과정에서 거부의 몸짓으로 수영을 포기했다는 전체 이야기를 알게 되자 그걸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부조리함을 거부하는 순수한 청소년의 자세는 그럭저럭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부조리함과 타협하며 세상의 필요악처럼 치부하고 있는 내게 별 행동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모색하지 않는 스스로가 반성되었다.

아직 그런 타협을 용서하지 않는 두 학생의 결벽적인 순수지향주의가 어른들의 때 묻었음을 부각시켰다.

그렇게 세계와의 갈등을 겪는 때 타지 않은 마음 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을 겪어왔던가하는 추억 비슷한 감상도 젖게 만들었다.

학교 내에서도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세상’은 실제로 왕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전제에서 그 성격의 강직함이 도드라져 주위 학생들에게도 빌미로 이용당하고 있었고 화자인 나도 자업자득이란 말로 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을 통해 따돌림이란 현상이 같은 나이인데도 그 순수함을 잃어버린 가해학생이 은연 중에 느끼는 잃어버린 마음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읽혔다.

세카이계가 사회적인 문맥을 생략하는 작품군을 지칭한다는데 이미 그런 류의 소설 특징이 세계를 적대화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문제가 표면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진짜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가벼운 부류의 소설군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오히려 사회의 문제에 민감한 작가군들이 이 계통의 소설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립은 소설 내 주인공의 생명을 대가로 하는 더 심각하고 절망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작은 소세계인 수영부에서의 비리 문제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수영까지 포기한 ‘박수영’은 그 점에서 ‘이세상’과 일맥상통했다.

‘이세상’이 적극적으로 학교사회를 질타하기 위해 자살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박수영은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일부분인 수영을 포기함으로써 소극적으로 학교사회를 질책하고 있었다.

둘 다 어쨌든 비리를 묵인하는 불합리한 사회와의 관계맺기를 거부함으로써 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동질성으로 차차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에서 소중한 한 사람이 되어 남았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소설을 매개로 주제의식은 더 직설적으로 나타난다.

두 주인공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에 이르면 순수함을 지키고 싶어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밀밭의 파수꾼과 두 소년이 이어지는 세 개의 안정된 구조를 이룬다.

세계를 바꿀 수 없기에 자신의 생명을 버리려는 전학생은 박수영을 만남으로써 자신이 세상을 버려도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수용하게 된다.

이제 그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일부의 더러움을 바라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소중한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두 소년이 서로의 깊어가는 교제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이해를 해가는 과정에서 어른의 세계로 무사히 편입되고 안착되어가는 결말로 치닫는다.

둘 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서 새로 소중한 것 하나를 더 획득하면서 세상이 부조리함에도 무너지지 않고 건재해가는 비밀을 깨친다.

그래서 책 속으로 도피하고 있던 박수영도, 죽음의 세계로 도피하려던 ‘이세상’도 진짜 세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통과의례적인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간다.

몸 담고 싶지 않은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 세계를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 두 소년은 이제 생각만으로서가 아니라 어른의 일원으로서 진짜 세계를 변화시킬 힘을 가진 세상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것임을 의심없이 믿는다.

데미안의 구절처럼 알에서 깨어난 두 사람이 김춘수의 시처럼 서로의 진짜 이름을 부르면서 새로운 생활을 이어갈 것임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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