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식거리며 읽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의 마트에는 서점이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트 안의 어느 코너보다도 넓었던 그 공간에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거렸다. 책을 사는 사람보다도, 그냥 앉아 읽는 사람이 많았다. 맨 위엔 안중근 선생님의 명언,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가 마이너스 시력인 사람도 맨눈으로 알아볼 수 있을만큼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어쩐지 새 책 냄새가 좋았던 나는 엄마와 마트를 갈 때마다 책 코너로 팔랑팔랑 뛰어가 책을 뽑아들어 구석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곤 했다. 덕분에 바지에 더러운 게 다 묻었다며 빨랫감 걱정을 하는 엄마에게 핀잔을 듣긴 했지만.
느닷없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어찌 보면 고루하기까지 한 제목을 한 이 작품이 묘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아주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와 인사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와닿을런지 모르겠다.
잠깐 내용을 소개하자면, 복수심에 치를 떠는 소년 앞에 나타난 백수 악마는 지나치게 가벼운 복장과 어투를 한 주제에, 여느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마들처럼 ‘네 소원에 대한 대가는 영혼이야!’를 외친다. 음,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우습다. 소년이 책을 읽질 않아 마음의 양식을 쌓지 못했고, 결국 그의 영혼은 비쩍 곯아있어 소년의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책을 추천하기 시작한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본 적 있냐? 존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맙소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읽어봤겠지.”
재밌게도, 소년은 복수를 위해 죽어라 책을 읽을 것을 다짐한다. 태그로 보아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즈음에 쓰인 작품인 듯 하다. 독자에게 책을 추천하기 위해 영혼을 팔아 복수를 하기 위해 영혼을 살찌우는 책을 읽어야 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기지가 돋보인다. 이 이야기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싶어도 악마가 안 사면 그만이라는 식의 한 줄 트위터에서 출발했다는 것도, 시쳇말로 ‘신박하다.’
어째 ‘마음의 양식을 쌓지 않으면 네 영혼은 비쩍 곯아 악마가 와도 팔아먹지 못할걸?’ 하는 목소리가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린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신나게 읽던 현대문학 단편집, 세계명작 등이 내 손을 떠난지 오래된 것이 찔려서일까, 먼지 쌓인 책들을 다시 펼치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짧지만 유쾌하고, 심지어 영혼을 살찌우는 데 도움을 주는 이 단편을 한 번 껴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