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에 맞서는 용사처럼, 랍스터에 맞서는 꽃게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꽃게 사가 (작가: 휘리,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4월, 조회 104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억압자에게 맞서는 꽃게를 다룬,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이것저것 공부하다 보면, 작품의 도입부는 행동으로 시작하라는 권고를 많이 보게 됩니다. 안 그러면 초반부에서 지루함을 느낀 독자들이 빠져나간다구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 권고 따윈 엿이나 먹으라는 듯 무시하며, 자신감 넘치게 세계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참으로 독창적이어서,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빠져드는 세계관을요!

작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구원’의 관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산물들이 식탁에 올라 인간의 입에 들어간 후엔 구원을 받고 다시 바다에서 태어난다는 관념인데, 해산물들은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도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럽혀지거나 하여 쓰레기통에 버려지면 구원받지 못할 거라구요. 저는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들이 믿고 있는 구원은 진짜일까요? 단체 최면에 걸린 것처럼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 해산물들의 모습은, 마치 천국이나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 같은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요리 당해 죽든 (사실 이게 더 끔찍할 거 같습니다. 익혀지면 화형이고, 잘라져서 생으로 먹히면… 으으) 그냥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가든 죽는 건 마찬가진데도, 그들은 전자를 칭송하고 후자를 무시하며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작품의 말미에서, 화자인 파리에 의해, 그 구원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 암시됩니다.

저는 무신론자이고 내생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뿐인 삶을 어떻게 채우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읽으니, 주인공 꽃게야 말로 이 주방에서 가장 알찬 삶을 살고 간 캐릭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게의 영웅담은 정말 게멋있습니다.

사실 작품의 뼈대가 되는 플롯은 간단합니다. 평화로운 세상에 억압자가 나타나고, 이어서 힘 없는 이들 중 하나가 영웅이 되어 억압자에게 맞섭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엑스트라인 인간의 대사를 제외하면) 대사 한 마디 없이 해산물들의 행동 묘사 만으로 플롯을 전개해 내는 작가님의 능력이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작가 소개를 눌러보면 이것이 습작이라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데뷔작’은 과연 어떨지 기대됩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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