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봤습니다. 아주 낄낄거리면서 읽었네요.
한편의 꽁트라고 생각하면서 봤어요. 다만 저는 김감판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그 행동원리가 쉽게 이해가 되요. 목적이 명확하고, 그 목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제시되어 있고 자기 희생을 통한 퇴장까지 완벽하죠. 그리고 그 반전이 설득력 있고 재밌어요.
표면이 아닌 이면의 이야기. 그 이면에는 무림이 있고, 어떤 거대한 음모 때문에 무림의 명맥이 점차 희미해지고, 그 때문에 자기가 쌓은 모든 것들과 진원진기까지 넘겨서라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그 의지.
물론 거기에 양념처럼 처진 저작권을 넘나드는 드립까지.
김감판의 이야기는 좋은 발사대라 생각해요. 그러나 거기서 발사된게 핫하 밈발싸 인거 같아서 조금 아쉽네요. 물론 이 아쉬움은 작품의 부족함 보다는 제 취향에 따른 것이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나’를 주인공으로 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좀 고민하게 되요. 이건 물론 제 취향에 맞지 않아서도 있지만, ‘나’의 행동원리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의 조건은 뭘까요? 이야기를 이끄는 캐릭터겠지요. 김감판은 어떤 이야기를 이끄나요? ‘나’ 에게 세계의 이면을 알려주고 관악파의 의지를 잇게 하는 이야기를 이끌어요.
그럼 ‘나’ 는 어떤 이야기를 이끄나요?
‘나’의 이야기는 모두 김감판의 이야기에요. 심지어 중간에 김감판의 기억을 그대로 전수하는 부분까지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감판이 퇴장한 시점에서 이제 ‘나’의 의지가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작가님이 후반부에 인용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명대사죠. 하지만 이 대사를 쓰기 위해서는 엉클 벤이 죽어야해요. 큰 힘을 얻고도 그냥 불법 파이트 클럽이나 나가던 피터 파커가 자신이 무시했던 강도가 자신의 소중한 엉클 벤을 죽이는 걸 보고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하듯이요. 엉클 벤이 없다면 그냥 그럴듯한 대사의 나열에 불과하다 생각해요.
스파이더맨의 비유를 계속하자면, 김감판의 역할은 엉클 벤 보다는 방사능 거미에 가까워 보이네요. 방사능 거미에 물리고, 이제 무림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혼자서 감정에 가득 차 있는데, 저는 그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네요. ‘나’ 가 스스로 이룬건 뭐고, ‘나’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서두에 ‘나’는 슈퍼히어로를 유치하다 말하는데 갑자기 나는 슈퍼히어로가 될거야! 라고 말하니 그냥 내공 전수 과정에서 김감판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데 김감판은 이미 퇴장했잖아요. 심지어 마지막 유언은 자유롭게 살아라고요. 그럼 나의 각성이 따로 필요해 보이는데 그 각성이 와닿진 않네요.
그래서 대한무림만세! 라는 외침이 황망하단 생각만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