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을 파면서 ‘펄프 픽션’이란 단어를 어쩌다 주워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몰라 검색을 해보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라는 설명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펄프 매거진’이란 잡지에 실렸던 싸구려 소설들을 총칭하는 거라고 나오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양산된 작가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넘사벽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 더 놀랐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접했던 공포소설들은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보단 일본이나 미국의 공포소설이나 괴담을 번역하여 명칭만 바꾸는 수준의 책들을 더 많이 접했는데 그래도 그 덕에 국가마다 공포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는 대강 파악이 되더라고요.
생각보다 외국의 공포소설 작가를 잘 아는 것도 아님에도 좀 유명하다 싶은 단편들은 그 줄거리를 알거나 이젠 제목도 출판사도 기억나지도 않는 조악한 번역본으로 한번은 접한 기억이 있습닌다. 제가 어린 시절엔 저작권 개념이 희박해서 외국의 공포소설을 그대로 베껴오거나 혹은 외국의 공포드라마의 줄거리를 그대로 베껴 한국 소설처럼 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듯.
그래도 나중에는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졌을 법한 공포소설 책도 접하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는 외국 영향을 받기는 했을지언정 소재나 분위기를 다루는 게 다르단 것을 느꼈고요. 여기 연재소설 ‘펄프 픽션’은 그 분위기나 소재가 그동안 본 한국 공포물보다는 어린 시절 우연하게 접했던 외국 – 특히 영미권 – 공포 장르소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어쩌다 보게 된 영화 ‘환상특급’을 한국으로 옮겨놓은 느낌도 받았어요. 하지만 수위는 오히려 소설 쪽이 높다는 생각이.
영미권 괴담 분위기의 책을 적게 접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 공포장르는 근접한 일본 괴담이 더 많았던 것 같아 한국괴담과 일본괴담이 범벅된 이야기책을 주로 접한 저한테는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영미권의 공포 소설 분위기임에도 그 배경은 멀리 있지 않으니까요. 몇 편의 단편은 그 배경조차 근미래에 모호한 경우도 있었지만요.
소설의 소재도 한국 괴담에 등장할 법한 원귀나 저승사자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차원이나 외계인 혹은 가공의 미래에서 벌어지는 일 등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터널’로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터널에 진입한 인간들이 끔찍한 경험을 겪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게 줄거리인데 사차원 소재 자체가 한국 공포물에서는 드문 케이스임에도 터널이란 공간 자체가 가져다 주는 공포와 소설 속의 오싹한 묘사 때문에 연재된 소설 중에서 이 단편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편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수위 자체가 꽤 높은 편이긴 한데, 텍스트는 그 묘사가 제한된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어 더 으스스하게 느껴질 수 있었고요. 요샌 텍스트에서 더 타격을 받는 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일까요. 이런 폭력적인 묘사도 그동안 접한 공포물에서는 드문 편이기 때문에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뭐랄까 동양 공포물들은 최대한 폭력 묘사를 자제하려는 측면이 많이 느껴지거든요.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던데 오히려 폭력이나 유혈 묘사는 공포가 아닌 액션물에서 더 많이 본 느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