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는 욕망이 들어있다. 군만두를 떠올리면, 몇 십년 전 한 남자가 이유없이 한 방에 갖혀 군만두만 먹었다는 이야기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되는 음식들과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만두를 좋아하고, 재료가 어떻게 들어가야만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되는지 알기에 만회반점의 군만두의 이야기가 군침을 돋게 만들었다.
매일 만회반점을 찾을 만큼 군만두를 찾는 것과 달리 여자는 집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음식물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가 나기 때문에 도저히 삼킬 수가 없다. 다른 식구들은 그가 내 놓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리낌없이 먹어 치운다. 남편과 나, 아들, 집나간 딸의 빈자리에는 시아버지가 자리를 자리를 매꾼다. 나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음식물에 대한 토기가 없다. 마치 하수구 구멍에 물이 꾸억꾸억하고 회오리를 치는 것 마냥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운다.
나와 대비되는 상황이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내가 느끼는 혼돈과 쩍쩍갈라지는 혼돈과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의 입만 생각 하듯 어느 동물 할 것없이 보양식으로 배를 불린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또 다른 기억으로 소환된다. 딸아이를 낳고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두번째 임신을 종용 받는다. 그 때 그들은 나를 위한 음식이기 보다는 아이를 위해 먹으라고 고기를 구워준다. 물론 나를 위한 음식이겠지만 여자는 모든 것을 다시 게워낸다.
그때 태어난 아들은 늘, 그녀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내 선택이 아닌 것들이 나를 다시 옥죄어 가고 나는 다시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다. 섬세하게 표현되지 않았지만 군만두 속 고기는 인육을 뜻하고 있고 그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입 속에 집어넣고 만다. 기괴하지만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여자의 모습에서 비장한 맛이 느껴진다. 중간중간 비어진 공간 속에서 주인공의 생각들을 떠올리게 되고, 장면 하나하나가 여러가지 인물들의 심상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나 마지막 문장이 가장 무섭게 느껴졌다.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더 긴 여운으로 이야기의 방점을 찍는다. 먹는 것에는 언제나 욕망이 스며있다. 누군가는 그 욕망을 계속해서 먹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인물을 그리고 있고, 누군가에게는 음식에 나는 강한 냄새에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이 결국 인물의 행동을 결정짓는다. 그런 부분이 재밌게 느껴졌고, 만회반점의 이야기가 맞물려 짧지만 강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마지막 문장 이후에 여자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만회반점을 찾는 다른 인물로 이야기를 그려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