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기 라는 방식은 언제나 흥미로운 접근이에요. 최근 켄 리우의 제왕의 위엄을 읽었는데 첫 챕터만 봐도 초한지에요. 그러나 작가는 용어를 바꾸고 배경을 편집하고 자신의 해석을 넣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죠.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변주되는 작품은 삼국지일 것입니다. 정사 삼국지를 나관중이 창작을 가미해 삼국지연의를 만들었고 지금도 자신만의 삼국지를 내는 번역가가 있고, 아예 삼국지라는 느낌만 내는 수많은 창작물이 있죠. 다시 쓰기는 분명 재미있는 기법이에요.
주제 의식은 솔직히 말해서 조금 낡았어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제학자가 이미 지적한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수식을 통해 노동소득의 가치 감소와 자본의 무한축제를 말하면 지엽적인 오류를 지적해 전체를 부정하거나 심지어 읽기조차 하지 않지만 사람들을 잡아먹고 그 시체 위에 우리가 서 있다!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죠.
주제 의식이 낡았다는 게 문제가 있진 않아요. 탈영에 공소시효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렇지만 3년에 한 번 부대로 복귀하라는 공고를 내린다고 해요. 그 때문에 탈영 공소시효가 지난다고 하더라도 명령 위반죄로 처벌받게 돼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그 모순이 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 그 모순이 없는 완벽한 체제라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표현 방식도 낡은 거 같아 조금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조현병 이란 단어를 메인으로 들고 온 것에 대해서요. 정말로 그랬어야만 했을까요?
광인일기는 1918년 작이고 10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광기와 정신병에 대한 많은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광인이라는 용어가 정신분열증으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조현병으로 바뀐 수준의 것이 아니에요. 인간 심리의 임상 병리적 이해에 대한 업데이트뿐 아니라 실존하는 집단이 존재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업데이트가 있었죠.
그러니까 조현병 환자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비-정신질환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것에 대한 업데이트가 이 작품에 되어있지 않은 거 같아 유감입니다.
과거에 광인은 편견 속에 사람들이었어요. 정상인과 명백하게 구분되는 다른 존재. 그리고 조현병이란 병명은 그 편견을 종식하기 위해 만든 단어에요. 그러나 조현병을 제목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마치 광인과 같은 묘사를 한다면,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덧. 이 부분은 순전히 취향에 따른 사족인데 광인일기에서는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어떤 해법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했죠.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어 아쉽네요. 그것이 현실에 가까울 순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