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말 절망하는 영혼 감상

대상작품: 잘못 태어난 당신 (작가: 아게오게, 작품정보)
리뷰어: 일요일, 2시간 전, 조회 5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순간이지만 나에게 벌어지는 일일 때에는 좀 더 각별하다. 누군가는 발버둥쳐서 그 무력한 감정에서 빠져나가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잘못 태어난 당신>의 주인공 나도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삼 년째 백수로 방안에 누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묘한 기회가 찾아온다.

영혼 주민등록센터 주무관 코치토는 그가 잘못 태어난 영혼이라고 했다. 나는 잘못 태어남을 느끼고 계속 고통받아왔는데 갑자기 찾아온 자가 나를 제자리에 돌아가 잘못됨을 느끼지 않는 세계로 보내준다는 거다. 세상과 불화해서 방에서만 3년을 산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환영받는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데려가겠습니다. 이런 말은 그 자체로 황홀한 유혹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했던 다른 우주로의 진입 앞에 망설일 때, 또 다른 손재가 나타난다. 림보다. 림보의 말은 더 기가 막히다.

하얀 사람과 검은 사람의 대립, 천국으로 이끌어주겠다는 유혹과 저 유혹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속삭임 속에서 나는 코치토와 림보의 의견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고립된 사람들은 쉽게 절망에 빠져 무기력해진다. 갑자기 찾아온 구원의 메시지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자기를 파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거기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진실을 판별할 능력이 없어진 사람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구할 방법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절망에 빠져있지만 귀가 얇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구원과 희망은 남아있을까?

‘나’의 모습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자기가 쉽게 구원받을 길을 불태워버린 사람이 울면서 구원을 향해 나아갈 길이 혹은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저장할 수 있는 나비를 닮은 갑상선(갑상선의 모양은 정말로 나비랑 비슷하게 생겼고 갑상선의 컨디션이 기분과 성격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때 더 재밌었다)과 케이크의 질감을 가진 육신같은 세부설정도 흥미로웠다. <잘못 태어난 당신>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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