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순간이지만 나에게 벌어지는 일일 때에는 좀 더 각별하다. 누군가는 발버둥쳐서 그 무력한 감정에서 빠져나가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한다. 그리고 <잘못 태어난 당신>의 주인공 나도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삼 년째 백수로 방안에 누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묘한 기회가 찾아온다.
영혼 주민등록센터 주무관 코치토는 그가 잘못 태어난 영혼이라고 했다. 나는 잘못 태어남을 느끼고 계속 고통받아왔는데 갑자기 찾아온 자가 나를 제자리에 돌아가 잘못됨을 느끼지 않는 세계로 보내준다는 거다. 세상과 불화해서 방에서만 3년을 산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환영받는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데려가겠습니다. 이런 말은 그 자체로 황홀한 유혹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는 감동하지만 코치토가 말한대로 영혼관리국으로 돌아가 원래의 우주로 돌아가려면 죽어야 한다. 그것도 자살로. 자기가 선택한 방법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런 잔혹한 결정 앞에서 코치토는 나를 죽여주지도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으로 육신은 이 세계에 두고 가고 영혼만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치토의 요구는 ‘나’가 처음에 지적했던 것처럼 사이비의 말도 안되는 설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나’는 그것이 사이비의 요구라 할지라도 여러번 듣자 감화되어 떨쳐내지 못한다. 자신이 느꼈던 공허하고 무력했던 감각을 단숨에 해결해준다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달콤하고 유혹적이더라도 그걸 이루는 방법이 자기파괴로 치닫는 극단적인 방법일 때 ‘나’는 차마 자신을 희생시키지 못한다. 잘못 태어난 영혼이든 뭐든 제대로 된 확증 없이 자기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게 심지어 3년동안 방 바깥을 나간 적 없는 ‘나’와 같은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자신이 원했던 다른 우주로의 진입 앞에 망설일 때, 또 다른 손재가 나타난다. 림보다. 림보의 말은 더 기가 막히다.
코치토의 말은 다 거짓말이고 코치토는 괴물이며 자신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경찰이라는 것이다. 둘의 경쟁은 처음이 아닌지 둘은 서로를 견제하며 결투를 벌인다 둘의 힘은 막상막하여서 ‘나’의 개입이 있어야만 이 결투가 끝날 수 있다.
고립된 사람들은 쉽게 절망에 빠져 무기력해진다. 갑자기 찾아온 구원의 메시지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자기를 파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거기에 넘어가지 않더라도 진실을 판별할 능력이 없어진 사람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구할 방법을 없애버리기도 한다. 절망에 빠져있지만 귀가 얇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구원과 희망은 남아있을까?
절망에 빠져 코치토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영혼을 저장할 수 있는 나비를 닮은 갑상선(갑상선의 모양은 정말로 나비랑 비슷하게 생겼고 갑상선의 컨디션이 기분과 성격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때 더 재밌었다)과 케이크의 질감을 가진 육신같은 세부설정도 흥미로웠다. <잘못 태어난 당신>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