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레즈투쟁기’라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을 반려하는 레즈 투쟁기인가”였다.
주인공 진희는 우연히 줍게 된 빨간색 이어폰을 통해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의 순애와 연결된다. 그리고 동창회에서 순애와 자신이 ‘사귀는 것처럼 보였다’는 말을 듣고, 잊힌 기억이 균열처럼 돌아온다.
그러나 진희는 동시에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들을 향한 폭력, 그리고 복역. 그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이어폰의 주인이자 순애의 딸 주애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진희는 끝내 깨닫는다.
그토록 증오했던 ‘동성애’가 바로 자신이 과거에 품었던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그녀는 자신을 지켜준 미령을 통해 진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결국 ‘반려’ 는 사랑을 함께하는 이뿐 아니라, 자신의 혐오와 상처를 반려하며 싸우는 존재들을 의미한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진희는 아들의 친구를 통해 아들의 진심을 듣고, 고양 퀴어축제의 현장에서 새로운 생의 가능성을 마주한다.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생각을 머물게 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모든 감정을 언어로 규정짓고 싶어 하는가. 나처럼 제도권 교육 안에서 살아온 사람은 늘 ‘정답’과 ‘오답’이 나뉘어 있는 세계에 길들여져 있다.
교육이 만들어 놓은 의미, 그리고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선택한 언어의 틀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그 엄지손가락 아래 눌려 있었다. 그래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았고, 사람의 감정마저 맞고 틀림의 문제로 구분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제도권의 언어, 규정된 언어, ,박제된 언어로 우리 삶을 가둬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처음 제목에 궁금했었던 ‘무엇’을 나름대로 다시 생각해본다. 삶에 규정된 모든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