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탄한 노을 비평

대상작품: 해가리미 (작가: 세라즈, 작품정보)
리뷰어: 선연, 7시간 전, 조회 9

일에 치여 살다가 잠깐 들른 게시판에서 피드백을 원한다는 글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제가 리뷰 작성엔 재능이 없어서…… 말이 두서 없어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 역시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며, 제가 드리는 피드백이 작가님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십시오.

팍팍 까달라고(?) 하셨지만 이 글은 그런 양파 같은 부류의 글은 아닙니다. 구성이 이상하지도 않고, 이해가 어렵지도 않아요. 만약 읽을 때 불편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면 가차없이 까드리려(?)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만 좀 더 고민해보실 수 있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해가리미>는 ‘해가리미’라고 불리는 우주가 한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줄거리가 일목요연합니다. 기나긴 세월을 지나 보내던 어느 날 해가리미는 자신과 교신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게 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우정을 쌓아가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데요. 어떤 일인지는 본문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1. 문체

줄거리에서 짐작하실 수 있다시피 이 이야기는 우주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화자가 우주인 만큼 거시적 관점에서 사건이 진행되는데요. 별의 탄생, 종말 등등이 어떤 재난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자연의 섭리, 피할 수 없는 일로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묘사됩니다. 담담한 문체를 선택하신 점은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온 해가리미의 입장이 100년도 채 못사는 인간의 입장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특히 이 담담함은 해가리미의 독백 및 사유에서 잘 느껴졌습니다. 산은 초록색 털로, 바다는 푸른 유체로 표현되는데 저는 이 ‘초록색 털’이라는 표현이 참신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산이 좀 보송보송해 보이긴 하지요. 해가리미가 민둥산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지네요.

문장도 잘 읽히고 묘사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딱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문단 혹은 주제 전환의 자연스러움은 읽기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디테일하게 공을 들여야 하는데요. 작가님이 이 부분에서는 약간 헤매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공전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렇게 덩어리 속의 빛을 마주했다.

 

그렇게, 그러던 중이었다.

 

위 문장들은 본문에서 발췌해 온 몇몇 문장들입니다만, 어때요? 반복되는 특정 단어가 눈에 띄지 않나요?

‘그렇게’는 그러하다의 준말로 어떤 상태가 그와 같다는 뜻의 형용사이자 서술어입니다. 앞서 말한 사건을 요약하거나 관련된 일을 서술하실 때 작가님께선 습관적으로 ‘그렇게’라는 단어를 쓰시는데요. 형용사가 들어가는 문장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같은 형용사가 반복되어 사용될 경우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작가님이 이 단어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의존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작가님께서 화제의 전환이나 어떤 상태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음을 서술하는 걸 어려워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 편협한 통찰로 작가님께 누를 끼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어떤 문장들은 ‘그렇게’를 삭제하고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습관처럼 특정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계실 경우, ‘내가 이걸 왜 사용하고 있을까’를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 설정의 활용

작중에선 ‘AETHER’이라는 신묘한 기계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소녀가 해가리미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계입니다.

그런데 이 기계를 왜 소녀가 가지고 있는지, 이 기계를 가진 다른 자들은 없는지, 있다면 왜 그들은 해가리미와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독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소녀가 타인에게 피곤할 정도로 정중하게 부탁해서 기계를 얻어냈다’인데요.

과학기술이 해가리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음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이란 찬란하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대단한 기계를 그저 해가리미와 소녀의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건 아깝지 않을까요?

또한 해가리미는 이 신묘한 기계를 만나기 전부터, 기계가 없이도 사람의 어휘를 이해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요. 언젠가부터 그들의 어휘로 세상을 그려나가게 되었다고 독백하는 대목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해가리미는 어떻게 기계 없이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는 걸까요? 저의 오독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작품을 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세계에 맞는 설정을 제작하게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만들어진 설정이 버림받지 않도록 잊지 않고 돌봐주는 것인데요. 사실 어떤 설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작가님의 마음이기에 딱히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의문이 생겨 짚어봤습니다. 혹 리뷰를 보고 계시다면 댓글 남겨주십시오.

 

3. 평탄한 구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사회 구조의 문제를 꼬집거나 어떤 거대한 주제를 논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감성’, 그것이 노리는 전부라고 받아들여지는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감성 SF물이라고 하기에 적절할 만큼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굴곡이 없다는 것입니다.

작품의 문체가 담담하고 건조하다면 사건이 소란스러워야 비로소 그로부터 비롯되는 간극으로 인해 글에 입체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주 평온하고 잠잠합니다. 작가님께선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도 소란스러운 사건은 분명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요.

예, 그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분명 작중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건들은 평범하고 감흥 없게 읽힙니다. 왜 그런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역시 어느 정도 ‘아는 맛’이라 그런 것 같더라고요.

어쩌다 발견한 인간을 사랑하게 된 한 우주의 이야기, 작품소개만 봐도 대략적인 줄거리가 유추 가능합니다. 비슷한 소재의 SF물도 많고요. 그렇기에 이 아는 맛을 어떻게 해야 나만의 맛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어떻게 해야 이 아는 맛이 더 극한으로 발휘될 수 있을지 한 번 고민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제가 추천드릴 수 있는 방안은 1. 소녀와의 서사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장면 추가, 2. 해가리미의 내면적 갈등 요소 추가 정도가 있겠습니다. 물론 추천은 추천일 뿐, 이것이 답은 아닙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리뷰가 되리라 예상합니다만, 사족 붙이지 않고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적만 한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작품으로 뵐 수 있을지 기대되는 글이었습니다.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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