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분히 주관적 감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김하라와 로흐브르흐흐로브 르브로.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으나 설마 이 이야기가 멀쩡하다 못해 애틋한 로맨스로 끝날 수 있으리라고 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형 외계인이라는 설명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감정이 외피로 표현되어 버리는 생물. 대부분이 우울이며 대부분이 슬픔이었지마는 주인공은 확실히 그가 감정적 고양을 겪었을 색을 알고 있습니다. 괜찮은 시작이지요. 다만, 분명 매력적일 수 있었던 일련의 존재는 두루뭉술하게 표현됩니다. 안개 너머에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은 방관자이며, 그가 왜 김하라를 원하게 되었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약물로 그녀를 취하려던 아르나의 음모를 막아주기는 했지요. 그것은 해당 약물에 관해 알고 있던 자의 정의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그냥 말 한번 걸고 돌아눕는 것으로 끝이었어요. 주인공을 향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그때부터였다, 라고 말한다면 그렇구나 싶은데 이야기는 쭈욱 흘러가버립니다.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여기서 좀 더 본격적인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지는 거에요.
악몽을 꾸고 일어난 밤 김하라가 왜 룸메이트를 찾아 그녀의 불안을 해소하고 싶어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호수에서 운명적인 예감을 마주하고 사랑에 빠져듭니다. 로흐는 자웅동체에서 남성이 되었는데 말미에 그를 여/남자로 표하며 추억하기에는 남성으로 변한 점이 아쉬웠어요. 그 자체로도 괜찮지 않았어? 둘은 사랑했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에요. 전쟁의 공포와 불안, 남은 자들의 알 수 없는 유대 의식과 밤하늘, 호수가 빚어낸 애정이었겠지요. 그래도 외계인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이야? 하고 궁금해지면서도, 아무튼 그녀가 겪은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겠어요?
둘의 사랑은 일주일만에 끝이 납니다.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연락도 끊기고, 로흐의 행성은 완전히 오염되어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리 궁금하지 않았던 아르나라는 조연에 붙은 부연설명이 없었더라도 전쟁의 참혹함과 두려움은 충분히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대였으므로 가능한 사랑이었을까. 어쩌면 또 다른 만남 같은 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첫사랑은 추억할 때에 아름다운 것인가보다 생각하면서 감상을 마치게 되어요. 사실은 감상을 쓰기 조금 저어한 게 이 글 특유의 묘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적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물음표만 가득해져서 끝나버렸거든요. 조금 아쉬웠고, 그래도 사랑하는 두 사람은 아름답고, 그리고 성별 뿐 아니라 종족을 초월하는 애정 같은 것들에 감화되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