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프로야구의 시계도 한동안 멈춰있었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지난 5월 5일 무관중으로 개막하였고, 일본과 미국 리그도 개막이 가시화되고 있어서 야구팬으로서는 참 반가운 요즘이다. 엄성용 작가의 <크리스 데이비스처럼>은 프로야구가 개막을 맞아 브릿G 야구 소설을 모아놓은 큐레이션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부제인 ‘소녀와 노인은 친구가 되었다.’처럼 이 소설은 은퇴후에 별다른 소일거리 없이 TV로 프로야구중계시청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노인과 이러한 노인의 일상에 뛰어들어 온 이웃집 소녀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야구’는 베일에 가려진 은퇴 전의삶을 뒤로 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무뚝뚝한 노인과 한없이 사랑스럽고 친절한 소녀가 우정을 쌓는 매개체가 된다. 소녀는 메이저리그를 좋아하고 노인은 한국프로야구를 좋아한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한다는점에서 그들은 한 마음이 된다.
소설을 읽으며 제목이 왜 <크리스 데이비스처럼> 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 메이저리그에 실존하는현역 선수인 크리스 데이비스는 작품 전개에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에 크리스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는 2명으로 그들의 묘한 관계가 작품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내야수인 크리스 (Chris)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외야수인 크리스 (Khris)가 그들인데, 이들은 동명이인에 타율 보다 홈런, 타점으로 승부를 거는 거포형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의 영혼이 바뀐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두 선수의 전성기와 타격 사이클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0cm에 100kg이 훌쩍 넘는 볼티모어의 크데 (크리스 데이비스)에 비해 180cm에 90kg 남짓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크데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드물게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하드웨어적 열세를 극복하고 4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거포로 성장한 선수이다. 즉,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크데는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볼티모어의 크데와 이름만 같은 ‘짭데‘였다가 이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등명해나가면서 ‘참데‘, ‘찐데‘ 라는 타이틀을 쟁취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소설에서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엄마와 함께 긍정적인 마인드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소녀는 메이저리그의 ‘크데‘를 보며 희망을 키워나간다.
“원래 엄청 못하는 선수였는데, 갑자기 홈런을 뻥뻥 치는 거예요! 이름이 같은 선수가 또 있는데, 그 선수는 다른 팀 홈런왕이어서 맨날 비교당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완전 역전!”
“정말 좋아하는가 보구나.”
“네. 저도 그럴 수 있잖아요.”
이렇게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지만 맑고 투명한 소녀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공주‘에게 찾아온 비극을 지켜보는 독자들은한층 더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 데이비스 처럼>은 노인과 소녀, 비극, 복수 등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전개과정을 지켜보는 묘미를 느낄수 있는 단편이다. 작년 54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 연속 타수 무안타라는 불명예 기록을 수립한 볼티모어의 크데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3경기 연속홈런을 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 발발로 리그 전체가 중단된 상황이니 삶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