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상당히 진행된 가까운 미래.
기후변화로 인한 뜨거운 날씨에 해빙은 녹아내리고 해수면은 올라오고 여러 가지
재해가 몰려와 인구는 줄어가고 사람들은 거주를 위해 위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해
나갑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막다른 길에 몰려버린 인류는
그제야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오래전에 늦어버린 연구를 하면서 대책을 세우려고 하죠.
주인공 라오웨이는 연구를 위해 북극으로 가는 경비행기 안에서 3년 전 지금과 같은
목적으로 북극에 향했던 파이퍼를 떠올립니다. 마지막 연락이 된 북극으로 떠난다는
파이퍼의 편지를 읽고 읽다가 뒤쫓는 마음으로 북극 기지 연구에 지원해버린 주인공.
향하는 일정과 도착 내내 줄곧 파이퍼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웨이는 3년 전
같은 연구로 방문했던 환경분석팀 모두 설원에서 실종되었다가 1명을 제외하고 돌아와
연구 예정보다 빠르게 귀환했다는 사실을 괴담처럼 듣게 됩니다.
이번에 같이 온 연구원 미하일이 그때의 환경분석팀 중 한 사람이었음도 알게 되지요.
북극 조사지에 도착한 연구원들은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장소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안부 무전에 기이함과 불쾌감을 느끼던 중 웨이와 함께 조사
나갔던 미하일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반응해 착란상태를 일으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전은 계속 수신되는데 그중에는 파이퍼의 목소리도 있고요.
이 작품의 분류는 SF, 로맨스로 주인공 웨이와 파이퍼가 서로의 애정 대상입니다.
두 명 모두 결핍을 가진 이들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타입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진취적이지만 무신경하고 불친절하며 비사교적이면서 웨이에게 수시로 무안을
줬다는 파이퍼는 가스라이팅의 달인으로 그다지 호감을 주는 인물이 아닙니다.
주인공과 친해지려고 다가온 첫 만남에서도 뻔뻔하고 제멋대로인데 첫 만남 이후로는
전혀 웨이에게 맞춰준 적이 없고 잘 대해주지도 않았다는 걸 보면요.
이 염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 왜 주인공에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웨이는 인생 내내 파이퍼에게 끌려다니고 집착하게 됩니다.
북극으로 떠난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연구에서 돌아와 말없이 짐을 꾸려서 떠나버린
파이퍼에 대한 감정을 질질 끌며 그가 갔던 북극에 뒤이어 연구하려 지원할 정도지요.
자기 결핍을 파이퍼로 채워 넣은 탓에 보답받을 수 없는 이에게 애정을 구걸하게 된
자존감 낮은 불쌍한 사람으로 보여요.
파이퍼는
그가 속한 환경분석팀이 북극 연구지역에서 차원 너머의 미래를 보고 인류의 멸종을
지연시키기 위해 멸망의 시작점을 자각한 상태에서 새로운 자원을 은폐한 탓에 차원과
시공간에 정주하지 못하고 옮겨 다니다가 위상을 잃고 흩어지는 소멸이 예약된 상태.
파이퍼만이 아니라 전 환경분석팀 모두 여러 시공간에서 관측되며 위치가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인물이 미하일에게만 보이거나 사라지고 정체 모르는 무전이 수신
되거나 했다고 합니다. 읽으면서 기이한 부분에서 서던 리치와 비슷한 느낌이구나
생각을 했었는데요. 어떻게 설산 너머에서 미래를 보고 단체로 위상이 불안정하게
변해버릴 수 있었는지 이야기가 커진 데 비해 설명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파이퍼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해서 인류의 멸종을 지연시키고 세상을 구했다
는데 그런 말은 옆에 있을 때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말하고 표현하는 거고 도깨비
처럼 나타나 자기 할 말만 하다가 원망스럽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아이고~ 그거 참 큰 일 하셨네~)
웨이에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알면서 먼저 다가오지 않았으면 인연도 없었을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연애나 좋은 친구 상대가 아닙니다.
3년전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생기는걸까 생각했더니 데릴을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인류의 멸종은 예정된 것이고 지연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면 진정으로 세상을 구하는 길은
멸종을 지연시키지 않는 쪽이겠지요. 지구온난화가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면 세상을
구하는데는 인간이 없는 편이 더 도움이 됩니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을 구하고
싶은거니까요. 지연이라도 시켜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