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밀한 시계를 바라보면서 놀라움을 느낍니다. 정교하게 이어진 기어와 나사, 그리고 시침과 분침이 모여 ‘시간’이라는 존재의 흐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과 완전성을 가집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시계일수록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초침이 한바퀴 돌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초침을 눈으로 쫓고 귀로 소리를 음미합니다. 그러니 완전하고 완결된 존재는 아름답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완전함과 완결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쫓으려는 미학적 본능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시계와 같은 <완결성과 완전성>을 추구하게 되면 <세계관에 대한 집착>과 <기승전결 대한 강박>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증상이 만났을 때 <지금은 설명하는 부분이니 마음껏 설명하자>는 기분으로 인물과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치중하게 됩니다. 여러 인물, 새로운 고유명사도 많이 만들게 됩니다. 대부분 이때 독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대부분은 떠나가십니다. 저 또한 그러한 어려움 때문에 계속해서 고쳐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요즘 웹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00시 00분 01초부터 시작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4시 2분 31초에 뜬금 없이 사건이 터지고 주인공은 휘말리게 됩니다. 발암 캐릭터들 나타나 독자의 입에 고구마를 처넣고 주인공은 몰아치는 사건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세계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불친절하죠. 주인공은 기발함과 끈기로 결국 독자에게 사이다를 먹입니다. 어찌 보면 요즘 작가는 오히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세상> 속에 주인공을 처박아두고 어떻게 살아 나오는지를 바라보는 <사디스트> 같이 느껴집니다.
만약 요즘의 경향을 따르시려면 1. 언급되는 인물의 숫자를 줄이고 2. 세계에 대한 설명을 줄이고 3. 주인공 중심으로 사건이 긴박하게 이어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4. <선사건, 후해설> 방식으로 일은 항상 터지는데 나중에 종결되고 나서야 그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긴박감과 흥미를 유도하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말 했지만 저도 잘 안 돼요. 소곤소곤 )
한편 요즘 경향과 반대되는 <완결성과 완전성에 대한 추구>가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납득할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이 시간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록 다른 이야기가 가지지 못한 <독자적 세계관:개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독자가 사랑하는 주인공과 그의 이야기>가 나타날 때까지 작가는 드넓은 대지에서 수많은 성을 짓고 인물들을 창조하며 법을 제정하고 문화를 창조하고 인과의 역사를 짓는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시간 싸움이죠. 그러나 언젠가 작가님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순간에 탄탄한 세계관 또한 조명 받을 것이며 독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낼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 (사실 이 말은 저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소곤소곤 )
리뉴얼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