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호러문학은 방대한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작품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분량이나 형식에 구애받지않고 사랑을 받는 건 역시 괴담형식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겪었던 이야기(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쓴 경우도 포함해서)를 듣는 것 같은 현실감에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생동감, 특히나 이야기의 장소가 내가 항상 지나치는 동네의 한 건물이라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살아움직이는 공포감은 공포물 중 단연 최고라 할만 하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한동안 괴담스타일의 글을 잘 찾아보지는 않았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괴담을 본 피로감도 있었고,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일을 써야 하는 괴담의 한계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브릿G 추천을 보고 읽게 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도시괴담 스타일의 공포물입니다.
글의 화자인 나의 친구는 GW호텔의 직원으로 3년을 근무한 끝에 VIP들에게만 키가 주어진다는 R층의 서비스를 맡게 됩니다. 12월의 끝자락, 캐롤이 울려퍼지는 평화롭고 설레임 가득한 연말에 친구는 R층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기괴한 상황에 직면하는데… 갑자기 사라진 직원들, 달라진 바깥 풍경. 마치 스티븐 킹의 ‘1408’처럼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은 묘한 위화감에 정적 속 등장하는 여인의 구두소리, 그리고 그 여인은…
‘호텔에 손님이 지나가면 예의바르게 인사를 해라. 그게 어떤 손님이든.’
나폴리탄 괴담의 한 구절처럼 선배가 들려준 충고를 따라 눈앞에 어떤 존재가 나타나든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않는 R층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괴담류 작품의 경우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표현들을 줄이고 대신 현실적인 묘사로 대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공포를 주는 존재가 현실감을 넘어서버리면 괴담이 주는 ‘실제에 가까운 상황에서 오는 공포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 작품은 괴담이 주는 사실적 재미와 공포물이 가지는 초현실적 분위기를 모두 잡아낸 아주 재미있는 공포 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호흡의 공포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세대에게도 환영받을 만한 늘어지지 않는 전개와 올드팬들도 좋아할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가 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다른 장르의 작품을 내셔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겠지요.
아주 오래전에 술집에서 친구와 둘이 술잔을 기울였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분위기를 잡던 친구는 ‘귀신을 보았다’며 뜬금없이 자신의 겪은 경험담을 풀어놓기 시작했지요.
하필 새벽 두시에 손님도 없는 조그만 술집에서 친구들 중 가장 겁이 많은 저를 붙잡고 말입니다.
이후로 몇년간 그녀석이 귀신을 보았다던 그 장소 근처엔 왠만하면 가지 않았습니다.
왠지 이제 호텔을 갈 일이 생긴다면 호텔 이름부터 찾아볼 것 같네요.
GW호텔.. 정말로 있는 건 아니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