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축적된 내공이 안정적인 필력으로
<닭들이 춤추는 밤>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작가님이 글을 오래 쓰신 분이 틀림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혹 글쓰기 경력이 오래되지 않았다 해도 추구하는 스타일이 명확한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안정적인 필력이 돋보였다.
우선 어떤 부분이든 묘사가 과하지 않다는 점이 좋았다. 분명하고 간결하게 세계관이나 캐릭터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별로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이미지를 그려내주는 점이 좋았다.
특히 리에 대한 인물 묘사가 짧으면서도 강렬했는데, ‘암벽처럼 각진 광대’ 등의 표현은 압축적이고 섬세한 표현으로 캐릭터의 이미지를 잘 살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셉과 론에 대한 인물 묘사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사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것인데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점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닭장을 스테럴에 비유한 부분이었다. 주인공 토로의 어머니가 맡아 운영하는 양계장은 작품의 전체 배경인 스테럴의 축소판으로, 제목이 왜 닭들이 춤추는 밤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기서 메타포 기법을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느껴졌다.
이외에도 문장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서두르는 느낌도 없었고, 그렇다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분명 여러 번 글을 고치고 매만졌겠지만, 그보다는 오랜 시간 글을 써왔기 때문에 가능한 강약 조절의 센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자면 바로 영화적인 연출이었다. 필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눈 거인에 대해 말해주는 장면이 그랬다. 보통 영상의 기반이 되는 글에서는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 핵심적인 메시지나 복선 등을 은연중에 드러내기 위해 특정 장면을 짧게 담아내는 법인데, 위에서 말한 장면에서 꼭 그런 느낌을 받았다. 흘러넘길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는 장면은 대개의 독자가 눈치챘을 것 같기는 했지만, 연출적인 면에서 상당히 좋았다고 느꼈다.
또 하나는 4월의 한때 찾아오는 축제 같은 기념일을 ‘눈보라의 인사’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꼭 인디언식 작명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중 배경의 문명 이전의 세계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잘 담아냈다고 여겨진다.
아는 맛이라 좋지만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작품은 작가의 필력 면에서나 연출, 서사, 은유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그러나 ‘옥에 티’를 꼽자면 바로 작품 중후반부터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주인공 일행이 한데 뭉쳐 프랭클린 시장의 비밀을 캐내려 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우나,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뻔한 감이 있었다.
인류 멸망 이후 바깥 세상에 나갈 수 없는 생존자들의 거주지, 갑자기 실종된 사람들, 훌륭한 지도자. 여기까지만 봐도 작품의 반전이 유추가 가능했다.
이런 면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신선함이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쉽게 말하면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뻔한 반전에도 불구하고 큰 인상을 남길 만한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치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작품의 제일 큰 매력인데, 그 이야기의 후반에 긴장감과 힘이 떨어져 버리니 용두사미가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 조금 아쉬운 점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화자가 17살 소년인데 ‘볼콰하다, 조야하다’ 등의 말을 쓰기엔 조금 억지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으니 조금 더 화자에 이입하여 어울리는 어휘를 세심하게 조정하고 꼼꼼하게 검토할 필요가 느껴졌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분명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치밀하며 훌륭했다. 리뷰의 분량만 봐도 칭찬이 과반이다.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기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신선함을 더할 수 있는 톡톡 튀는 맛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