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변명을 해 두자면 저는 소수성이라는 분야에 대해 별다른 전문 지식은 없으며, 딱히 소수자도 아닙니다. 정확히는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여타 부문에 있어서 제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일일이 따져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별 생각 없이도 딱히 불편함 없는 생활을 영위해 왔다는 점에서 어영부영 사회의 주류에 속해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드는군요.
사실 성적 지향성 혹은 정체성 외의 부문에서 소수자성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경제적 소수자나 정치적 소수자 같은 말은 없지요. 빈곤계층(심지어 이건 다수가 아닌가?)이나 정치적 극단주의자 정도가 있을까요? 인간은 아무튼 성에 대해서는 유독 강박관념을 가진 종족입니다. 일일연속극에서 살인은 해도 섹스는 해서는 안 되는 희한한 윤리관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통용되는 사회니까요. 어쨌거나 성소수자인 주인공은 연대라는 아름다운 깃발을 들고 광활한 우주를 넘어 또다른 소수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특별히 성소수자를 찾은 건 아니지만요. 사전을 보니 연대란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경험상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데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는 있겠네요.
어떤 소설이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소설을 이두나 향찰로 쓰지 않은 이상 대충 둘 중의 하나에 속합니다. 소설이 말하는 주제가 어렵거나 소설의 구조가 어렵거나. 그런데 본 작품은 외관상 개그물 같지만 저로서는 두 범주 모두에 속한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주제의 측면에선 소수자성에 대한 SF장르를 통한 고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기본적인 틀은 낯설게 하기입니다. 성소수자인 화자의 눈을 통해 인간과 다른 가치관과 사회구조를 지닌 태호의 말랑인들과 인간 사회를 비교하는 것이지요. 처음에 주인공은 무턱대고 말랑인들의 사회를 이상화합니다. 종족단위로 공산주의(뭘 생산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의 이상을 이룩한 어쩌구 하면서요. 그러나 실상 말랑인들의 사회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강간과 태아살해(?)등 그다지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로 지탱되고 있었지요. 인구대책 등의 측면에서 나름의 정당화 논리도 있긴 합니다만 듣다보면 어딘가 기분이 찝찝해집니다. 주인공 역시 아연한 기분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말랑인들에겐 그런 질문 자체가 언어폭력이 될 따름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본 작품은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우화처럼 읽힙니다.
한편 구조적인 측면에서 본 작품은 반전이라는 요소를 축적해 나갑니다. 태호의 말랑인 사회는 이상적이지 않고, 태호의 소수자들도 이상적이지 않고, 주인공을 안내해온 화우도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이리로 꺾고 저리로 꺾으면서 주인공과 독자의 기대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는 것이지요. 이런 반전을 통해 여러가지가 새롭게 조망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덩어리는 앞서 말한 상대주의, 그 중에서도 윤리의 상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내심 ‘올바른 소수자’를 찾아온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만 사실 ‘이상적인 소수자’를 찾는 것이 병크일 뿐, 올바름이란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성소수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주장이 옳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지요. 같은 소수자라도 LGBT와 연대할 수는 있으나 페도필리아와 연대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구 표면에도 충분히 널려 있는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소외받는 소수이기만 하면 연대를 꾀할 수 있으리라고 본 주인공의 모험은 이상화했던 종족의 이상적이지 못한 일면만을 발견한 채 씁쓸하게 끝납니다. 스펀지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털 없는 원숭이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같을 수는 없고, 보편적인 윤리관 또한 같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반전이란 기본적으로 드러냄이고, 말 그대로 작중에서 여러가지가 팍팍 드러나다 보니 심란해지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먼저 작중의 주인공은 잘 봐줘야 어설픈,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태도를 지닌 ‘지구인’으로 그려지고, 말미에 가면 본인도 이 넓은 우주에서는 소수자가 아닌 지구인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책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주인공이 어리석었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작중에서 주인공이 잘못한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되었습니다. 편협한 잣대로 타인이나 타문화를 이상화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당연히 오만한 행동이고 불쾌감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각 종족은 연대니 뭐니 할 생각 말고 알아서 문제를 해결합시다, 라고 결론짓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연대를 거부당한 화우의 펀치가 말해주듯 작가분도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특별히 다른 방도가 제시된 것도 아닙니다. 장황한 모험 끝에 그저 우주는 넓고 의사소통은 어렵다는 점만이 확인된 것 같아 약간은 찝찝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태호 사회는 비록 종족 자체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지구인이 보기에 제법 크리피한 성문화를 가지고 있으나, 어쨌든 최소한 인간보다는 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런 이성을 바탕으로 화우의 입을 통해 인간 문명을 변명해 줄 정도지요. 너희는 우리와 달리 이러이러한 종족이니 너희의 성문화와 육아방식은 당연히 이러이러하겠지? 물론 당연히 인간은 그렇지 않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이런 넘겨짚기는 돌려까기가 되고 주인공은 깊은 내상을 입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을 통해 태호 사회는 대한민국 육군과는 정 반대로 각을 배척하고 있으며, 본인들의 체제가 완벽하다는 전체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이 드러납니다. 이는 앞서 자신들을 이상화하지 말라고 한 화우의 일갈에서 암시된 바이긴 합니다만, 동시에 화우가 지구인에 비해 자신들을 지성인이라고 칭한 근거가 뭔지 미묘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네들, 사실 그냥 멘탈 약한 스펀지 인간 아닌가?
꺾고 꺾는 맛이 참으로 좋아서 읽다 보면 어느새 끝까지 읽게 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편에서 다른 문명을 표현하려면 부득이 설명으로 도배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주인공의 흥미로운 목적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소개가 된 점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드리프트의 충격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이 충격을 왜 느껴야 되는지 그 이유가 어느 순간 아득해졌다고 봅니다. 소수자란 무엇이며, 연대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기에는 흐릿한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물론 블랙코미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처음 제시된 주제의 깊이를 생각할 때 더 선명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런 걸 의도하셨는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마는요.
때때로 이런 장르물은 모종의 사고실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까지 인간 종족과 추상적인 주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다른 종족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언젠가 돌고래나 코끼리와는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할수록 결국 서로에게 호러 그 자체가 될 것 같다는 생각뿐입니다. 우주는 넓고 넓으니, 제발 부디 만나지 않기를. 아무렴 읽는 동안 매우 즐거운 작품이었고, 앞으로도 작가분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