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도 좋아하고 ‘호러’도 좋아하는 터라 제목을 보고 홀린듯이 들어와서 읽었는데, 상당히 취향저격인 소설이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하여 리뷰하는 것이므로, 높은 주관성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소설을 일단 읽고 떠오른 건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뭔가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목도 ‘우주에서 온…’이고 중간에 ‘색채’라는 단어도 튀어나오는데다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불가항력적이고 기이한 일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다만,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는 그렇게 날아온 색채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밝히지 않고) 마치 방사능처럼 마구잡이로 퍼지며 사람이고 동식물이고 다 물리적으로 파괴한다는 점에서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무기력한 코스믹 호러가 느껴졌다면, 이 소설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에 의한 인지적 파괴에 대한 묘사에 집중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건의 발달은 비슷하되, 이후 벌어지는 일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꽤나 재미있는 심화이자 비틀기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온 색채’에 영감을 받은 게 아니라면 설레발 죄송합니다 ;;;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에서 ‘우주에서 온 색채’는 손에 꼽히는 명작이니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형태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를 다루었으니 말이죠) 그런 소설이 연상될 만큼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영화로 따지자면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이 떠올랐습니다. 이것도 원작소설이 있다는데, 제가 영화만 봤으므로… 크흠… 제목이 조금 싼티나는 것 같은데, 원래 영어 제목은 annihilation입니다.
어쨌든, 저 영화도 ‘SF호러’에 들어가는 영화이긴 합니다만 (어디선 또 ‘SF스릴러’라고 되어있네요? 호러랑 스릴러 구분 너무 어렵습니다 ㅠㅠ) 호러를 기대하고 본 사람들 대부분이 머릿속에서 물음표 백 개쯤 띄우는 영화입니다.
호러라고 하면 ‘와! 그레이브 인카운터! 컨저링! 애나벨! 엑소시스트!’ 같은 무지막지한(?) 영화, 그니까 신경 거슬리게 만드는 금방이라도 바이올린 줄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유발하는 음악, 점프 스케어(깜놀), 비주얼 쇼크와 어두운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저 영화는
매우 아름답고 황홀한 비주얼에, 정적이고, 조용합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호러야?’라고 생각할 법 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ㅋㅋㅋ <유전>이 너무 사람 눈을 높여놨…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은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읽고나서 도대체 그 상황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 끔찍한 관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자극되는 은근한 찝찝함과 섬뜩함이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배경도 밤이 아닌 (아마도) 낮에 이루어지고, 장면보다는 대화와 행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갑니다.
호러에도 통틀어서 호러라고 부르는 거지, 그 내에도 굉장히 다양한 갈래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에도 이름이 다 따로 붙어있는지, 그런 걸 구별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튼, 저는 점프스케어보다는 심리적 공포를 더 선호하는 입장에서(선호하는 것이지, 그게 더 훌륭하다고 보는 게 아닙니다)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테드 창이 쓴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영화로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로 각색되어 아주 놀라운 SF를 보여줬는데, 거기서 두 지적생명체가 만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 나옵니다. (영화도 아주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을 추천합니다. 특히 물리학 공부하신 분이라면, 물리학의 변분법과 인과관계 해석의 차이를 토대로 우주에 대한 관점을 풀어놓은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영화에선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빠져서 아쉽…)
즉, 하나의 세상이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떤 문화적 공유도 없이 고립되어 발달한 두 지적생명체는 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물며 지구안에서도 이렇게 세계화로 이어지기 전에는 <문화충격! 컬쳐쇼크!> 이러면서 ‘와, 세상에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권도 있더라’하고 놀라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약 그게 우주적 규모가 되고, 인간이 외계인을 만났을 때 이 엄청난 관점의 차이를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코스믹 컬쳐 쇼크 같은 게 되겠군요.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을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가능성을 생각해내 흥미롭게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관점의 차이가 달라도 ‘와, 문화 상대성! 너도 문명인, 나도 문명인, 우리 다함께 쎄쎄쎄 하하호호’하고 융화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동생이 마주하게 되는 외계인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끔찍한 관점’을 가진 것으로 나옵니다.
가장 좋았던 건, 그 ‘끔찍하고 이질적인 관점’을 그냥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하고 너무 뭉뚱그려 퉁치고 넘어갔다면 미지에 대한 공포는 느끼기는 커녕 상상력의 자극조차 못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어떻게든 그 비슷한 느낌을 찾아내기 위해 몇 가지 예를 툭툭 던집니다. 동화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선별된 선전물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는 둥, 아기를 뜨겁게 달궈진 쇠 위에 바치는 제물로 보는 관점 (묘사를 보아하니 몰록의 인신공양인 것 같네요) 이라는 둥 하고 말이죠. 같은 인간들끼리조차,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끔찍하거나 이질적인 관점을 서로 가지기도 하는데, 이 외계인들은 그것을 뛰어넘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하여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저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생각할 때마다 지능의 차이, 문명의 차이, 언어의 차이, 신체의 차이 같은 것만 생각했었는데,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인류 문명에서도 있었던 일인데, 외계인을 생각하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그런 걸 간과하게 되네요 ;;
스티븐 킹이 ‘호러는 일상의 파괴’라고 말했던 걸 읽은 적 있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뭐라 했는지는 기억 안 나네요. 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일상의 관점’을 파괴해서 공포를 꾀하는 게 아닐까…라고 거창하게 말해봅니다 ㅋㅋㅋㅋ 하, 이렇게 말은 잘하면서 막상 쓰면 못 한다는 게… ㅜㅜ
아마 저라면 그 운석 안을 들여다보고 미쳐버린 동생의 입장에서 소설을 썼을 것 같은데, 그런 식의 전개보다는 이 소설처럼 동생은 관찰대상이 되고, 형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전개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의 시선이 딱 우리의 시선이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어서 무서워’라고 설득하기 보다는, 우리와 같은 시선을 가진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고를 하는 형의 시선에서 공감하며 같이 ‘이질감과 영문 모를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짜여진 게 좋았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비현실적인 것을 딱 마주했을 때의 섬뜩함이 잘 표현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걸 앞에서 쫙 서술해주기 때문에, 후반부의 ‘평화로운 공존’을 읽으면서 상당히 찝찝하고 뒷맛이 썼습니다. 과연 관점이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서로 섞여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애초에 다른 문명을 만났을 때 평화로운 공존이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아 다소 섬뜩했습니다. 암울하기 짝이 없군요.
언제나 인간의 인지를 뛰어넘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따른 정신의 붕괴와 광기의 발현을 다룬 이야기는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글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